우스운 행동을 하는 인간

솔로몬의 반지 11- 동물에 대한 웃음 편

by 여름지이

마지막 편이다.


동물 행동 연구가가 동물과 사귈 때 엄청나게 우스운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는 앞에서도 더러 나왔지만 마지막 장에서 폭발한다. 동물과 인간의 행동을 비교하는 학문을 창시한 사람으로서 그들(동물) 세계로 들어가는 건 당연한 과정이고 어쩌면 그렇게 하고 싶었던 호기심이 과학사 속의 그를 있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웃들에게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는 걸 피할 수 없었던, 그래서 주민 알텐베르크 사람들에게 해명 삼아 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청둥오리 엄마 되기

회색기러기 새끼들이 태어나 첫 번째로 만나는 생명체를 엄마로 정해버리는 것과 달리 야생 오리, 그러니까 청둥오리 새끼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부화기에 얼굴을 들이밀며 “안녕”, 엄마 되기를 자처한 로렌츠에게 막 깨어난 오리 새끼들은 기겁을 하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 버린다. 천둥오리 모습에 가까운 터키오리 품에서 부화시켰지만 실패한 경험을 떠올리며 그들의 남다른 ‘각인’ 포인트를 고민하게 되는데, 그것은 모습이 아니라 소리였던 것이다. 엄마를 바꿔 흰 집오리에게 청둥오리 알을 품게 했더니 성공! 이들이 비슷한 점은 단지 목소리였다는데 착안하여 로렌츠도 갓 부화한 청둥오리 새끼들 앞에서 비슷한 소리를 내어 보았고, 이어진 이들의 신뢰에 찬 눈빛은 의도적으로 꽥꽥 거리며 멀어지는 그를 따라갔다.


엄마 되기에 성공했지만 문제는 새끼들의 눈높이였다. 아무리 앞에서 소리를 내어도 그들의 눈높이를 벗어나면 새끼들은 어미를 잃은 듯 허둥거리며 애타게 울부짖어 눈뜨고 못 볼 가련한 모습을 연출하니, 역시 가련한 사람 학자는 계속 쪼그리고 앉아 꽥꽥 거리며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정원 근처를 다녀야 했다. 오리 새끼들이 자기를 따르는 것과 흔들거리면서도 꽤 정확하게 걷는 모습에 기뻐하며.


그러다 시선을 올려보니… 한 무리의 소풍객들이 울타리 가에 들러붙어 있었는데, 입이 벌어져 있었고 놀란 토끼눈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높이 자란 풀숲으로 인해 그들 눈엔 새끼오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갈가마귀 집에 나타난 괴물

갈가마귀들이 누군가의 손길을 느낄 때 깍깍 소리를 지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잡았던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다는 건 상당히 특별한 점이다.

결과적으로 로렌츠의 갈가마귀라고 표시하기 위해 발에 각대를 끼우는 일이 난항에 처한다. 관찰자를 겁내어 자신들 생태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연구 작업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해결책은 하나, 변장을 하고 껄끄러운 일 하기. 겨울 축제 때 사용하던 괴물 복장을 이용했다. 꼬리가 달린 두꺼운 털가죽 옷, 뿔과 혀가 돌출한 가면을 쓰고 그것도 한여름에, 놀라 울부짖는 갈가마귀들에 둘러싸여 펜치를 들고 굴뚝에서 굴뚝으로 기어 다니며 새끼들에게 작업을 하는 모습이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다정하게 꼬리를 흔들고 유유히 창문으로 사라졌다는, 하!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는 절대 정체를 드러나면 안 되니까, 갈가마귀들의 눈이 더 무서우니까.


미워할 수 없는 새, 카카두

새장에 갇혀있던 카카두 새를 놓아주면 당분간 자유로움을 누리지 못했다. 더 이상 묶여 있지 않다는 걸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나뭇가지 위에서 계속 날려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날지 못하는 새의 모습은 로렌츠에게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으로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자 카카두는 개와 흡사한 친근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든 따라다니고 사람 친구가 보이지 않으면 온 데를 찾아다니기까지 하니, 공중에 날고 있는 카카두를 불러 세우는 건 쉬운 일이었다. 단지 부르기 위해 사람 친구가 내는 소리, 카카두 소리에 흡사한 그 소리가 거의 돼지 멱따는 소리에 가까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벼락을 맞은 듯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카카두가 다른 식구들에게 보이는 애정도 만만찮다.

낮잠 자고 있는 친구의 아버지 옷 단추를 모조리 떼어버려 이 늙은 노인은 경련이 일어난 듯 비틀거리며 몸을 숙이고 계단을 올라갔다. 팔 단추, 조끼 단추… 거기다 바지 대문 단추까지 떼어 버렸으니, 풋풋!

카카두에게 누구보다 뜨거운 애정의 대상이었던 어머니, 그리고 이모들의 우아한 오후 티타임엔 이렇게 참여해 버린다. 바깥에서 테이블에 앉아있는 어머니를 발견하고는 급강화를 하여 창문 안으로 뛰어들어 차와 케익, 설탕이 세팅된 테이블 공중에 머무는 순간, 낯선 이모들을 발견하고는 달아나다 날개로 바람을 일으켜 분말 설탕을 모조리 날려 버린 것이다. 남겨진 모습은…

그들 일곱 명의 로코코식 부인들은 얼굴은 물론 전신이 하얗게 되어 있었고, 경련이 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근사했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




동물을 보고 좀처럼 웃는 일이 없다는 로렌츠는 기이한 동물 모습을 보고 웃는 구경군들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자신에게는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종 변천의 수수께끼를 나타내는 것이기에 오히려 외경스러운 감탄을 자아낸다고. 희화화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동물을 보고 웃지는 않지만 자신이 기꺼이 그 대상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고 동물들 세계로 성큼 들어간 이 연구자의 이야기는 기상천외하고도 인간 중심의 사고를 허물어 준다.


동물 애호가도 보호 운동가도 아니지만 이 책에 집중하게 된 건 단지 주변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작은 공간에서 조그맣게 살아가는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기르던 과정은 주변 다른 뭇 생명들을 인식하게 해 주었다. 이 땅은, 지구는, 나아가 우주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다가 아니며 보이지 않은 게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아이러니하게도 보이지 않은 것들로 인해 어쩌면 이 세상은 돌아가는 게 아닐까.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그 자리에 있어 전체가 유지되는 것이었고 다른 이를 보며 스스로를 발견하고 이해한다.

어느 것 하나 무용하거나 쉬운 생명은 없었다.


조그마한 아이 손을 잡고 푸른 숲길을 은빛 강변을 걸을 때 주변 생명들은 말을 걸어온다. 함께 다정하게 평화롭게 뽐내며 살아가자고. 동식물은 그러고 있는데, 먹고 먹히는 자연의 순리 속에서 지킬 건 지키고 있는데, 육체 바깥의 무기를 발달시켜 온 유일한 존재, 인간만이 공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울먹이던 어린 소녀의 나라에 곧 다가올 봄처럼 폭격이 멈추기를.












* 커버사진 / 그림책 <시애틀 추장> 중

* 간간이 넣은 삽화 이미지는 저자 콘라트 로렌츠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