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브런치 여행

춘천과 연희동

by 여름지이

여기서 '브런치 여행'은 브런치를 먹기 위해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닌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 핫한(나만?)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글에 나온 장소를 우연히 11월 한 달 동안 두 군데나 만난 일이다. 우연히라 했지만 필연일지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정보도 설렘도 마음 어딘가에 묻혀 있었으니까.


가끔, 아주 가끔은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들고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사람이란 존재에 관심이 많다. 그럼에도 사람을 만나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라 모임 같은 걸 즐기지 못하고, 점점 멀어졌다. 어느새 먹어버린 나이와 코로나 환경은 더욱 이런 성향을 부추겨 어쩔 수 없이 가져야 되는 타인과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꼭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그리고 또 다른 만남이 생기면 온갖 안 나갈 유치한 궁리를 하기도 상대방이 피치 못할 이유가 생겨 못 나오겠다는 연락을 먼저 해오기를 바라기도 한다.


사람, 이야기,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면서도 사람과의 만남을 꺼리는 이 놈의 이중적인 성격에게 브런치 활동은 부담 없는 만남의 장 인지도 모른다. 글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또 다양한 사람들 글을 읽으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동호회 모임 같은 곳에서 만날 법한 취향이 비슷한 이들을 집에서 쉽게 만나는 기분이 드니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면 친근한 이웃 느낌마저 들어 때때로 그 이웃이 겪은 일이나 활동, 장소가 나도 모르게 기억에 남아 다른 동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나 현실이 되어버린 브런치 이웃들!


만남 1. 생애 처음 춘천엘 갔다. 요즘 유일한 현실 메이트가 콕 집어 그곳을 가자고 했을 때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 건 춘천 어디쯤에 있다는, 오래된 골목 작은집 담장 너머로 쑥 올라와 있던 키 큰 라일락 나무 한그루다. 브런치 글에서 알게 된 장소와 나무, 만날 수 있으려나, 여기서도 소심함이 작동한다. 궁금하면 가면 될 것을 나를 모르는 집에 나만 알고 찾아가는 것 같아 생각만 해도 쑥스러웠다. 모두에게 열린 장소는 대부분 그러할진대 내가 그 작가님 글을 너무 많이 읽어 사심이 들어가 버린 것이다. 저저… 브런치에서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 말하기도 그렇고, 다 알면서 모르는 척 좁은 공간에서 집중도 안되면서 책만 보고 있자니 그것도 조금 가증스러울 것 같았다. 앳다, 모르겠다! 만나든지 말든지 나는 그저 춘천을 여행할 뿐이다, 대범한 척 itx 청춘 열차를 청춘을 멀직히 보낸 두 사람이 설레며 탔다.


춘천이 이렇게 작은 도시인 줄 몰랐다. 역에 내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온갖 블로그에 나온 장소들이 있었다. 차비도 안 들고 계속 걸어 다닐 수 있다니! 횡재한 기분으로 먼저 닭갈비 골목에서 점심을 든든히 먹고 사람들에게 물어 약사리라는 옛 동네 쪽으로 발길을 이었다. 그날따라 날씨는 추웠으나 햇살은 따스해 천천히 망대골목을 걸으며 블로그에서 추천한 카페에서 차도 한잔 마시며 춘천의 소박함에 젖어들었다. 사실 나오면 안경을 써야 되는 불편함 때문에 맵 보기가 귀찮아지고 수다 떠느라 그 장소에 대한 기대감은 아예 접혀 있는 상태였다. 무슨 드라마에 나왔다는 오래되었으나 마당 넓은 양옥집도 기웃거려보고 골목들을 힐끔거리다… 헐, 낯익은 나무 한 그루가 기다렸다는 듯 크게 들어왔다. 단박에 잎이 아직 달려있는 나무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갔고, 그 라일락 나무가 맞았다. 그리고 ‘첫 서재’ ‘open’ 이 적힌 조그만 나무 간판이 키 작은 대문에 걸려 있었다. 이렇게 찾기 쉬운 장소라니, 당신도 스윽 훑고 가셔요, 노래 가사처럼 마당에서 스윽 훑기 시작했다. 창가에 한 사람이 책을 읽고 있었으며 마루 유리창 너머로 의자에 앉아있는 작가님? 이 설핏 보였다. 바깥에서 웬 여자 두 명이 들어오지는 않고 어슬렁거리며 사진만 찍고 있으니 작가님이 신중하게 고개를 한번 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린 또 소곤소곤 말소리도 발소리도 낮추며 글에서 나온 이미지들을 둘러보다가 골목으로 살며시 나왔다.


하얀 꽃을 피웠던 라일락이 돌아봐져 내년 봄 다시 꽃이 필 때 한 번 더 오리라 마음으로 나무에게 약속하고 말았다. 그때는 서재 안으로도 들어가 보고 인사도 하며 창가에서 책읽기 삼매경에 빠져 라일락 나무와 아담한 집 풍경을 만들어 보련다. 허리가 뻐근해지면 동네 끝자락을 감고 있는 약사천 수양버들을 다시 만나러 나오게 될 것이고 단풍이 아름다웠던 죽림동 성당의 봄은 또 어떨지. 좋은 곳은 다시 방문해 주는 게 미덕이다.


만남 2. 가끔씩 뉴스에 등장하는 연희동엘 갔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겨울이면 동네마다 하나쯤 열리는 뜨개방에 실용적인 패턴이 많다는 소문이 나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 든다면 규모가 어느 정도까지 커질 수 있을까, 를 상상하면서. 현실은 기대 이상이었다. 얼마나 뜨개실을 많이 팔았으면 큰 건물을 올릴 정도가 될까. 그것도 땅값 비싼 연희동에서 말이다. 부산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연희동에 있다는 <바늘 이야기> 건물을 확인하고서 뜨개질이 이렇게 사업화되어 뜨개실 쇼핑 매장이 또 이렇게 근사해질 수 있다니, sns로 홍보의 한계가 없는 요즘 참 놀라운 일이 많구나 싶었다.


더 놀라운 일은 뜨개질 건물을 돌아 나오다 만난 나지막한 이 건물이다.


SA사 RU러 GA가? 아~~ 사러가 쇼핑센터, 연희동 작가님 글에 나온 그 쇼핑센터구나! 맞아 연희동이니까 이 동네지,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듯 반가워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진짜 한때는 구하기 어려웠던 수입품, 가게들이 왼편을 장식하고 있었고 오른쪽으로 일반 마트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흡사 외국 마트처럼 과일들이 포장되어 있지 않고 단정하게 쌓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형 마트와는 다른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오래도록 늘 그 자리를 지킨 동네 명물이라니 좀 근사해 보였다. 계속 주민들의 자랑이 되어 살아남기를 다른 동네 사람까지 응원을 해본다.


글은 요술지팡이 같은 면이 있어 보잘것없는 일상도 글로 적으면 한층 빛난다. 하물며 작정하고 글로 소개된 장소는 읽는 이로 하여금 가보고 싶은 로망을 불러일으키지만 막상 가보면 평범한 장소 일수도 있지만, 그곳의 의미를 찾는 건 찾아간 이의 몫이다. 요즘 내가 읽고 쓰는 브런치엔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와 이야기가 있는 장소가 나온다. 차곡차곡 담다보면 길 모퉁이 어딘가에서 또 불쑥 한자락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반가움도 애잔함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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