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빙과 포플러

by 여름지이


따듯했던 날씨가 돌변하여 눈보라까지 만난 날 슈바빙을 걸었다.

슈바빙은 뮌헨의 대학들이 모여있는 곳 근처 레오폴드 거리 일대를 일컫는 말이다. 앞 세대들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작가 전혜린, 한때 뮌헨의 유학생이었던 그녀의 짧은 생이 남긴 수필집 배경이 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되어 모두가 가난했으나 순수했던 시절, 한국의 문학 지망생들은 전혜린의 번역으로 헤르만 헤세, 하일리히 뵐, 에리히 케스트너, 루이제 린저 같은 독일 작가들을 제대로 접하기 시작했다 한다. 순수와 진질을 추구하고 정신적 자유를 갈망하던 전혜린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당대의 새로운 여성상으로 평가받는 한편, 완벽한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지성적인 현대 여성의 심리로서 분석된다. - 나무위키 -

사후 발간된 수필집 두 권이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였다는데, 내 언니들 방에도 뒹굴던 책이었고, 그래서일까 정확한 경로는 알 수 없으나 뮌헨은 몰랐어도 슈바빙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실은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의 궤적 같은 걸 찾으려 했던 건 아니다. 대학가 쪽에서 바라본 개선문 너머 눈에 띄게 들어온 키 큰 가로수 길이 궁금했을 뿐이다. 알고 보니 그곳이 레오폴드 거리, 슈바빙 지역이었다. 그리운 어떤 이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서 무작정 그곳을 향해 걸었다. 그리운 이는... 어린 시절 신작로 가로수였던 포플러 혹은 버드나무라 불렀으나 정식 명칭은 양버들 나무인 그 나무다. 레오폴드 거리에는 그 시절 포플러 나무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었다. 고향의 포플러 나무가 계속 자랐다면 이 정도 일거라고 알려주듯 울창한 포플러 길이 겨울 끝자락을 품위 있게 장식하고 있었다. 잃어버렸던 친구를 다시 만난 듯 그 길을 걷고 서성였다. 회색빛 하늘까지 말갛게 올라왔다.


시대와 열정이 일렁인다. 교육혁명가이자 시인인 이오덕 선생님이 생각난 건 포플러의 기개를 자주 노래했기 때문이리라. 바보라도 좋아, 죽을 때까지 하늘 위에서 노래처럼 살고 싶다는 시인의 포플러는 사라졌어도 참된 열정으로 온몸을 다해 살았던 선생의 정신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말뚝이 되어도 부지깽이로 쓰이다가도 땅에만 꽂으면 살아나는 포플러의 강인한 생명력은 그분의 삶을 닮아 시대의 어른으로 남았다.

윤기가 좌르르 했던 어린잎들이 푸르름을 더할때 키 큰 나무가 바람에 몸을 맡긴 소리는 때때로 귓가에 찾아온다. 포플러 나무 밑에 서면 싸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하늘 가는 바람들 푸른 잎에 부딪혀 이파리마다 물방울로 부서져, 부서져 머리 위로 쏟아지는 소리.

물질은 풍요로우나 영혼이 메마른 시대, 전혜린과 이오덕이 걷고 노래한 포플러는 슈바빙에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쌓인 나무는 그때의 정취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길가던 이방인을 잠시 시간여행자로 만들었다.


포플러

-이오덕

어쩌자고 저렇게

키만 컸나?

싱겁다는 것은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지.


아니란다. 나는

하늘 위에 살고 싶은 나무.

내 키가 크다는 것은

낮은 곳에서 보기 때문 아닌가?


그렇지만 너무

여위었는 걸.

어디, 우리 느티같이

살찌고 오래 살아 보렴.


살이 찌면 무엇하게.

불룩한 뱃속은 썩어

박쥐들의 집 아닌가?

오래 살아 무엇하게.


아무래도 생각 부족이야.

센 바람이 오면 순식간에

넘어질걸 짐작 못하는

바보가 아닌가?


바보라도 좋아.

바보라도 좋아.

죽을 때까지 하늘 위에서

노래처럼 나는 살고 싶어.


포플러 길에 어울렸던 슈바빙의 명물, 걷는 사람 동상









*초록색은 이오덕 선생의 다른 시 <포플러나무>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