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 피나코텍 미술관

by 여름지이

뮌헨에는 200여 년 전에 형성되어 지금에 이른 ‘쿤스트아레알’이라는 예술지구가 있었다. 미술관, 박물관, 문화 관련 기관과 대학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앞서 이야기한 슈바빙도 이곳과 연결되어 있다. 모든 건물들이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위치라 서양 문화예술을 경험하기에 알맞은 장소였다. 그러나 열정과 체력은 한정적이라 뮌헨 공과대학과 90도 각도에 있는 미술관, 알테 피나코텍에만 가보았다. 피나코텍(회화라는 뜻) 미술관은 세계 6대 미술관 중 하나로...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놀랍고도 조금 식상하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왜 대부분의 것들은 *대 중 하나인지, 어쩌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뮌헨이랑 관련은 왜 또 이렇게 많은지? 러시아 화가로만 알고 있던 칸딘스키도 뮌헨 미술 아카데미를 나오고 이곳의 주요 미술그룹(청기사파)까지 창립했더라.

암튼 피나코텍크 미술관은 알테, 노이에, 모던 이렇게 세 개의 테마로 건물이 나누어져 있어 규모가 대단하긴 했다. 친근한 근대 미술 노이에관으로 가고 싶었으나 수리 중이라 중세 미술관 알테로 가게 된 것이다. 모던은 왠지 난해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선택은 항상 아쉬움을 남긴다.


알테는 중세 미술관인만큼 2층엔 기독교 성서와 관련된 그림(라파엘로, 루벤스 등)이 대부분이었고, 1층은 수리 중인 노이에관에 있는 작품들을 조금 옮겨 놓은 듯 익숙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과 로뎅의 조각상, 그리고 거대한 루벤스의 그림도 있어 정말 아는 것만큼 볼 수 있었다. 담아 온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그림들을 꺼내본다.



마르가 레트 스톤보로 비트겐슈타인의 초상, 1905, 180*90

아무리 서양미술에 문외한일지라도 단번에 알아본 클림트의 그림, 맞았다. 거의 오스트리아 국민 화가가 된 구스타프 클림트는 <키스>. <유디트>등 화려한 색채 그림으로 유명하다. 금세공사인 아버지 어깨너머로 각인된 화려한 금빛 이미지는 장식 미술가인 그의 정체성이 된다. 하지만 공공작품으로서 그의 대담성, 예를 들면 화려한 색채, 관능적인 여성이미지 등은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게 되는데, 그런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명망가 여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위 초상화는 자신의 자화상은 한 점도 남기지 않았으나 오롯이 여인들을 탐닉하고 그녀들에 집중했던 클림트의 화려한 초상화 작품들 중 그나마 소박해 보여서 더 인상적이다. 당대 유명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누나 마가렛을 그렸다는데, 재력가였던 그녀 아버지가 결혼을 앞둔 딸을 위해 선물한 거라고. 그런데 포즈도 조금 엉거주춤, 표정도 어딘지 어색하다. 아니나 다를까 마가렛은 이 초상화가 마음에 안 들어 다락방에 집어넣고는 꺼내보지 않았다 한다. 지성까지 겸비한 마가렛은 카사노바 기질이 다분한 클림트의 끈끈한 눈빛이 불편했던 것일까.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게 사실은 제일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 감각은 뇌의 하수인에 불과하니까.



비토리아 칼도니, 1821년, 89.5*65.8, 캐버스에 유화

독일화가 프리드리히 오버백(1789~ 1869)의 작품이다. 뮌헨이 속한 바이에른주 회화 콜렉션 중 하나라니 당연히 피나코텍 미술관에 있어 마땅한 그림이다. 초상화 주인공인 비토리아 칼도니는 모나리자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당대 화가들 사이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꼽혔다. 1807년경 태어난 그녀는 이탈리아 알비노에서 온 양조업자의 딸로 1820년부터 다양한 예술가들의 모델이 되었는데, 로마에 거주하는 독일어권 예술가 그룹 내에서 오직 라파엘로만이 그녀를 묘사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위대한 모델로 추앙받았다. 13살 때부터 모델이 되었다니, 아름다운 모습에 비치는 고단함과 슬픈 눈매는 연출인지 본연의 모습인지, 많은 그림들 중 눈길이 머무른 표정이다.


돈키호테, 1868

돈키호테를 그림으로 만난 건 소설 속 그의 캐릭터만큼 흥미로운 일이다. 그린 이는 오노레 도미에(1808~1879), 왕정 시대인 19세기에 벌써 세상을 풍자한 프랑스 화가였다. 온갖 핍박을 당하면서도 과감한 정치 풍자로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냈다는 풍자화의 대가 오노레 도미에를 알고 보니 삶의 진실을 풍자한 돈키호테랑 어딘가 닿아 있는 듯하다. 많은 작품들 중 훌쩍 지나치기에 알맞은 색채도 크기도 소박했던 이 그림이 내게 들어온 건 돈키호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건물 안 넓은 공간에 긴 시간 머문다는 건 녹녹하지 않은 일이라, 사실 미술관 현장에서는 짧은 시간에 많이 보는데 집중하다 보니 큰 감흥을 받기 어려웠다. 이 글을 적으며 시대적 배경과 화가를 알아가며 그림을 보니 훨씬 더 다가온다. 이렇게 한 작품에 대한 짧은 이야기라도 적는 시간이 그래서 의미 있지만, 계속하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아 익숙한 그림들은 모아 본다.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으로부터 들은 화가들 그림이 거기 다 모여있었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여기에 있었구나
모네의 수련 그림 250점 중 하나를 보았다
광고나 그림책에서 많이 본 그림풍
동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루벤스의 그림이 많았지만…


로뎅, 세잔, 마네, 모네, 쿠르베, 루벤스 그리고 우리의 고흐까지 익숙한 화가들이다. 아마 내 눈에 들어온 그림들은 보수 공사 중이라는 노이에관에서 임시로 데려온 그림일 것이다. 결국 알테, 노이에 두 개의 관을 대충 둘러본 셈이다. 어느 블로그에서 본 모던관, 그니까 현대미술관 쪽은 공간과 미술이라는 주제인지 빛과 뻥 뚫린 시야가 시원해 보여 살짝 거기를 가볼걸 하는 후회가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해 본다. 배경지식이 부족해 감히 언급할 수 없는 훌륭한 작품들이 그득했지만 그림을 잘 모르는 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항상 먼곳의 것을 접하고 오면 가까운 곳을 돌아보게 되고 의욕까지 생기지만 실천이 안되는 게 병이다. 지역의 좋은 전시회가 열리는 군립 양평미술관부터 자주 가야 겠다.


긴 미술 산책을 마치고 아트샵을 둘러보는 건 그냥 재미인데, 꼭 지갑을 열게 하는 물건이 언제나 여러 개가 아닌 꼭 한 가지뿐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미술관에 와서도 난 동화 속 삽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이 그림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막스와 모리츠>는 독일 동화의 고전이다. 기막힌 장난꾸러기들 이야기인데, 빌헬름 부쉬라는 작가를 알고 보니 또 여기 뮌헨 아카데미를 다녔고 예술 동호회 '젊은 뮌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는 걸 집에 와 그 책을 다시 들추어 보고서 알았다. 분야는 다르지만 뮌헨의 예술작품, 예술가 맞았다. 꼬마 두 녀석이 옛 친구인 듯 과하게 반가웠다.

삽화가 가득 든 귀여운 휴지, 히히!






이전 05화슈바빙과 포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