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공원은 자유다.
발길 닿는 자, 누리고자 하는 자, 누구나 적당히 손길을 탄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풀어헤칠 수 있는 곳, 도심 공원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뮌헨에 있는데도 '영국정원'이라는 정체성이 모호한 이름을 가진 그곳에 다녀오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영국정원은 영국정원이었다. 정원이라 하기엔 너무나 방대해 밭둑가 개미가 되어 세상은 오직 그 곳 뿐이라고 잠깐 착각 하기 좋은. 모나코 왕국보다 두배 이상, 뉴욕 센트럴 파크보다 십만평 이상 더 큰 규모라니 도심 공원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소박한 도시가 공원 부자였다. 이 공원외에도 첫글에 소개한 올림픽공원, 웨스트 파크, 님펜부르크궁전 후원 등 짧은 기간동안 짧은 다리가 쉽게 가본 곳이 무려 네곳이나 된다.
처음으로 온전히 시민을 위한 공원이 된 이곳의 탄생은 눈치빠른 왕의 통큰 실천이었다. 1789년 프랑스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났고, 뮌헨에서는 시민들보다 먼저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아름다운 공원을 하나 설계하라" 는 명을 내린 왕이 있었다. 그 왕은 당시 남부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제후 '테오도르'라는 사람인데, 이자르 강변에 있는 약 백만 평 가까운 자신의 수렵원을 내놓은 것이다. 권력과 권위의 상징 수렵원을. 한창 명성을 떨치던 왕실의 수석정원예술가 '루드비히 스겔' 이란 사람이 설계했다. 벌떼처럼 일어날지도 모르는 시민들이 정말 무서워서 그렇게 한 것일까. 아무리 군주의 시대일지라도 깨인 군주에게 백성은 권력을 이용한 억압이 아니라 가르치고 보듬어야할 대상이었다.
그러한 계몽군주에 의해 탄생한 영국정원에 발을 디딘 지난 2월 말의 풍경은 봄이었다. 계절로서 봄이 아니라 단어가 가진 의미 spring, 튀어 오르다, 나타나다,에 걸맞은 모습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조깅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산책 나온 개들까지 어찌나 활발하게 뛰어다니든지 눈길따라 마음도 덩달아 요동친다.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가 그렇게 다양한 줄 몰랐다. 평지인 풀밭은 물론이고 시냇가, 언덕에, 경사진면에, 설치물 난간에,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나무 가지에 올라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던 두 사람. 정해진 장소에만 앉는 생활에 익숙해진 문명인?은 듣기만 한 에덴 동산이 생각났다. 그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주변의 시선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그 순간에 녹아있는 사람들. 실제로 여름이 되면 누드로 그 곳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니 듣기만해도 아찔하다.
주변에 큰 강(이자르강은 작았다)이나 산(알프스?)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넘치는 물들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맑고 깨끗하기까지 한 우렁찬 물길들을 보며 부러웠다. 바다보다 사람 사는 곳 가까이 있는 모든 물길을 사랑하고 추앙하는 나로서는 한여름 빼고는 늘 물이 부족한 동네 물길이 아쉬웠던 터라 부러웠던 것이다.
물길에 홀려 걷다가 더한 장면을 만났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 광막한 바다, 파도와 조합이 맞는 서핑보드타기가 도심과 공원 경계에 있는 냇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잠시 멈추어 누구라도 구경꾼이 된다. 길가에서 다리위에서 서퍼와 물살의 한판 겨루기에 덩달아 마음을 실은 나그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