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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by 여름지이

텃밭에서 내려오다 오랫동안 눈여겨본 우동집에서 새우튀김이 두 개 올려진 우동을 한 그릇 먹고 나오며 큰길 건너 빌라 구역으로 들어섰다. 샛길이라 할 수 있는 그 길로 빠질 수 있는 건, 지난봄 똑같은 경로로 내려오다 탐스럽게 피어있는 하얀 라일락꽃에 끌려 그쪽으로 가보았기 때문이다. 오래된 빌라와 오래되지 않은 원룸 건물이 마주 보고 있는 시작점에 큰 라일락 나무가 하얀 망방이 모양으로 꽃을 잔뜩 달고 있었는데, 막 만개 했는지 라일락 향이 뿌려진 향수마냥 풀풀 날려 잠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어 처음 맞닥뜨린 골목을 걸어가 보니 마당이 있는 오래된 주택들이 더러 있었고, 폐가처럼 보이는 덩치가 아주 큰 집이 눈에 들어와 또 멈춰 잠시 고쳐보는 상상을 하다가 아는 길로 빠져나왔다. 이제는 그 구역도 아는 길이 되어 텃밭을 다녀올 때는 가끔 그 골목을 통과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우동을 먹은 날도 그랬는데, 때 이른 추위가 평년 기온을 되찾아 한낮이라 입었던 외투를 벗어 들었고, 걷는 몸은 식곤증까지 겹쳐 나리 했다. 걸음은 느려지고 주변 집들에 눈길이 가고 마침 대문이 활짝 열린 집을 지나고 있었다. 훤히 보이는 마당에는 여자 어르신이 텃밭으로 보이는 곳에서 등을 보이는 앉은 자세로 연신 열무 같은 걸 뽑아 손질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정신이 뺏겨, 마당 텃밭이라니, 부러운 눈빛을 마구 쏘다가 그냥 지나쳐 왔는데, 안 되겠다 싶어 되돌아가 다시 대문간에 서고 말았다. 우리 텃밭에서 캔 서울배추가 들어있는 분홍색 보따리를 들고는 볼 일이 있는 것처럼 남의 집 안을 기웃거린다. 옛날 시골집처럼 대문에서 마당까지 거리가 있어 포도나무 서너 그루로 아치형 터널을 만들어 놨다. 포도 몇송이가 까맣게 말라 있다. 마당에 들어서면 왼쪽이 본체 오른쪽이 텃밭이고 큰 은행나무 한그루가 집 바깥에서 내려다보듯 우뚝 서있어 전체 집 풍경이 되었다. 정남향인지 따끈한 가을 햇살이 집을 내리 안고 있다. 일에 몰두하느라 어르신은 인기척을 전혀 못 느끼는지 뒤로 돌아볼 낌새는 없다. 안녕하세요. 그제야 돌아보았지만 곧 하던 일 계속하여 머쓱하기 이를 데 없어, 지나가다가 집이 예뻐 섰네요, 아, 네, …. 집이 남향인가 봐요…, 네. 지금 일이 많아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 네 네, 일 하셔요. 그만 가겠습니다. 더욱 머쓱하여 가던 길로 돌아서면서 어르신의 태도가 군더더기 없는 집과 닮았다는 생각에 이어 군산의 오래된 집에 살고 있는 민병헌 사진작가가 떠올랐다. 오래 방치되었던 집을 한눈에 보고 반해 단박에 그곳에 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마침내 이사를 갔고, 100년의 시간이 쌓인 집의 집사 노릇이, 추구하는 예술세계랑 무관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비할바는 아니지만 더군다나 이 집은 억만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집이지만 뒤돌아 걸어가며 열망 비슷한 것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내놓은 집이라면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사고야 말겠어,라는 무모한 다짐 같은 것. 이유는 특별할 것도 없다. 남향집, 마당텃밭, 풍경 같은 큰 나무, 단 세 가지에 덤으로 기차역이 멀지 않다는 것. 남은 하루동안 집 생각에 사로잡혔으나 저녁이 되어 현실적인 문제를 상기하자 쉽게 올라온 열망이라 또 쉽게 사그라드는 듯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 또 그 집 앞을 비슷한 시간에 지날 일이 있었는데, 여전히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나 마당 텃밭에는 이제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어제 그곳에서 이루어진 일 부스러기가 밭에 조금 어지럽게 남아 있을 뿐이다. 햇살도 집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으나 어제처럼 그렇게 빛나지 않았다. 평범하기 이를데없는. 전체적으로 그 공간의 색이 바랜 느낌이랄까. 사람이 보이지 않는 집은 썰렁했다. … 무엇이었을까, 어제 그 집이 그토록 한 행인을 사로잡았던 이유가. 사실은 집이 아니라 밭일 때문에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는 어르신의 뒷모습이었나. 집 문을 열고 나오면 나타나는 텃밭, 마당텃밭에서 일에 몰두하는 노인.. 말동무가 그립지 않은 할머니 모습, 아, 어쩌면 되고 싶은 미래의 모습 아닌가. 꿈을 꿨나 보다, 열린 대문 안을 엿보며, 길을 걷다가, 대낮에. 오랫동안 생각하여 구체화시킨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꿈같고, 마음에 드는 집이 시시때때로 눈앞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긴 외출을 할 때는 반려생명을 두고 오는 것처럼 집이 애틋한 사람에게는. 그럼에도 떠나기를 반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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