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엄마

by 여름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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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는 이제 보통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알아서 장가를 갔거든요.

하고 싶은 걸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그는 결혼식까지 실컷 했다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햇볕 아래서 일도 얼마나 실컷 했는지 10년쯤 늙어 버린 일도 있습니다.

옛이야기 속, 고약한 일을 겪고 하룻밤새 늙어버린 사람까지는 아닐지라도 오랜만에 본 사람들은 놀라고, 처음 본 사람들은 아무도 형의 동생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날

이번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엄마 앞에 나타났습니다.

중고로 그것을 인수한 곳이 집에서 가까워 하룻밤 자고 간다고요.

가방에서 거뭇거뭇 한 걸 꺼내 놓으며 이건 직접 만든 사람만이 먹을 수 있는 곶감이라며 의기양양하네요. 만들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껍질 벗긴 감이 말라가고 있을 뿐인데.


엄마는 아들 왔다고 감자 넣은 맑은 수제비 한 그릇을 내놓았어요. 밥을 싫어하고 세상의 맛있는 음식은 다 알아서 해 먹어 점점 몸이 부풀어 가는 중이라, 가볍게 먹어라고요.

또 한겨울에 오토바이를 타는 맛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 엄마는 아들에게 동네 한 바퀴 태워달라 했지요. 꽁꽁 싸매도 다리에 바람이 어찌나 시리게 들어오는지 별 재미 없었어요.

아들은 뒷자리까지 덜컹거려 혼미해진 엄마를 햄버거 가게로 데리고 갑니다. 시골에는 햄버거 먹기 어려워 먹고 싶다고, 별수 있나요 아들이 먹고 싶은 거 먹어야지요.


집에 오자마자 아들은 우주인만큼 부풀게 옷을 몇 겹을 껴입고 사랑하는 아내와 반려견 ‘타로’가 있는 곳으로 해 지기 전에 돌아가야 된다고 바삐 떠났습니다.

잠깐 겪은 시린 바람을 아들은 여러 시간 맞으며 추위 속을 계속 달리겠지요. 한여름 비닐하우스 안에서 맛보았다는 그 상쾌함을 닮았을까요. 엄마는 마음이 무채색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야만 될 것 같아서요.

먹은 햄버거 때문인지 화장실을 또 갔고, 자기 전까지 계속 올라온 불내 나는 고기냄새.

아들과 엄마는 이솝우화 <황새와 여우>처럼 서로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권한 거였어요.

알지만 그리 합니다. 알면서도 서로 먹어주며 상대방 기분을 조금 헤아려보는 것인지.


며칠 후,

엄마는 곶감 같지 않은 곶감을 그제야 먹어봅니다. 촉촉한 단맛에 이제는 흡족한 마음이 되어 자세히 들여다보아요. 따지 않은 꼭지 주변으로 '타로'의 하얀 털이 몇 가닥 햇살 속에서 날리고 있네요.

엄마는, 아들을 보는 듯 슬쩍 미소 지어요.

그래, 너 주변은 너의 결과다.

타로도 너 같고, 곶감도 너 같고.. 너는 나 같고..



https://youtu.be/lgJPmMOWPU4?si=jryWOYMwY99mUL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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