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멀리서 손자가 왔습니다.
할머니는 어느새 건장한 청년이 된 손자가 이렇게 찾아와 주니 기분이 더 좋습니다. 그것도 혼자서 뚜벅뚜벅.
이것저것 챙겨 먹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새야…, 이제 하고 싶은 거만 하지 말고 하기 싫은 것, 그니까… 해야 될 일도 좀 해야지?
하하! 할머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기도 시간이 모자란데 하기 싫은 걸 언제 해?
.......
평생 책임과 의무감으로 해야 될 일만 하고 사신 할머니는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사는 손자의 미래가 걱정이 되나 봅니다.
손자는 어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았기에 할머니 걱정을 샀을까요?
첫째, 어린 시절엔 자연과 친구와 실컷 놀았습니다. 콧등엔 땀이 송송, 바지가랭이엔 흙과 풀물이 묻어있는 날이 많았어요.
둘째, 청소년이 되고부터는 친구랑 음악이랑 주로 놀았습니다. 딱 한번 주변 어른들 걱정에 학교 공부랑도 친해보려 힘껏 시도해 본 적이 있었어요. 성적이 훌쩍 올라 여러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들었고 부모님은 이제 성취감을 맛보았으니 학습의 길로 들어설 거라고 내심 기대했지요. 그러나,
아, 이렇게 성적 올리는 게 괴로운 일이라면 난 안 하고 말겠어. 오른 성적이 하나도 기쁘지 않아!
셋째, 대학을 가지 않기로 하고 수능을 보지 않았습니다. 전교에서 딱 두 명 보지 않았는데, 그중 한 명입니다.
넷째,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려 전환기술센터에 갔습니다. 온 세상에 가스와 전기가 다 끊어져도 따뜻하고 밝게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이라 합니다. 목공과 집 짓기도 배웠습니다.
다섯째, 사랑하는 여자 친구랑 그냥 함께 살더라고요.
할머니는 하기 싫어도 해야 될 일이 있어 그것이 사람 구실을 하게 하고 좋은 일을 불러 온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한때의 치기, 즐거움일 뿐이라고요.
손자는 현재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지금도 좋고 미래에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즐겁지 않으면 앞으로도 즐겁지 않다고요.
그렇게 살아온 할머니 현재 삶의 만족도가 궁금하고 또 그렇게 살아갈 손자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손자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해야 될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만, 타인의 삶을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손자는 주변에 대한 호기심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얼굴이 밝고 목소리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