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essbut

벚꽃은 핀다.

by 여름지이


봄이라고 앞다투어 피는 꽃들은 많지만, 이젠 정말 봄이라고 도장을 꾸욱 찍는 꽃은 단연 벚꽃이라 생각한다.


작년 이맘때는 참 설렜다. 세상에 어디 할 일이 없어 겨울부터 남모르는 벚꽃길을 물색하고 미리 답사도 하며 꽃이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더랬다. 정말 특별한 일이 없어서 그랬고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전염병 시대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영영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준비하고 기다린 만큼 한적한 곳의 만개한 벚꽃들은 봄을 팝콘처럼 부풀려 놓아 그 기운으로 이어지는 계절들을 따박따박 통과했다. 도무지 도전하고 성취하는 노력이라고는 모르는 게으름 뱅일지라도 계절의 변화라는 자연의 선물은 누구보다 과하게 누리면서.


느린 듯 빠른 듯 어느새 해가 바뀌더니 벚꽃 피는 완연한 그 봄날이 또 코앞에 와 있다. 올해는 준비도 기다린 적도 없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그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도록 무엇에 정신이 붙들려 있었나. 꽃보다 소란한 세상이었다. 뉴스를 자주 검색하고 있었고 어느 황당한 사람한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먼 곳에서는 종교분쟁도 내전도 아닌 힘센 나라가 이웃나라를 침략하는 전쟁까지 일어났다. 6.25 때처럼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평화를 위협하는 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인식하는 세계가 상당히 좁은 인물이 마침내 나라의 정치지도자로 결정되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우려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나랏일에 이렇게 관심이 간 적도 남의 나라 일이 이렇게 우리 일처럼 느껴진 적도 없다. 나이 탓이라고 하기엔 가만히 앉아 너무 많은 것을 알수 있었고, 진실마저도 변하는 거라지만 아직은 유효한 진실이 있다.


영화 <1917>의 벚꽃 장면은 서늘하고 인상적이다.

폭격이 난무했을 봄날의 전쟁터 어느 곳은 그토록 화사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라진 마을에 하얗게 핀 벚꽃들. 잘려나간 가지들 앞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임무를 맡은 또 다른 병사는 일촉즉발의 시간에 고향의 과수원과 어머니를 떠올리며 잠시 발길을 마음을 멈춘다. 멈추지 않는 계절의 순환은 전쟁으로 파괴된 일상이 더 처절하게 다가온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입구에 서있는 기분이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니기에 모두의 손에 작은 촛불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고단하고 외롭진 않기를,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 생각없는 사람이 되지않기를 바라 본다.


이 땅에도 전쟁이 난 나라에도 곧 벚꽃이 피겠지. 벌 소리까지 왕왕거리는 벚꽃 터널을 지날땐 세상의 시간은 없어진다. 오롯이 그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한 사람 영웅에 기대는 시대는 지났고 지양되어야 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복잡해진 국제관계 속에서 지도자의 역할은 국가의 운명에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에 직면한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을 발견하여 옮겨본다.

마침 인터뷰이가 대통령 당선인에게 당부한 말이다.


“미래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지도자가 참된 지도자예요. 앞으로 닥칠 재난을 기회로 만드는 것을 공동목표로 삼고 그 목표 성취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내 책임져야 하지요. 그것은 스스로 깨달아야 해요. 스스로 비전을 만들고, 그 꿈을 같이할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화해서, 사회를 변화시켜야해요.”


- 경향신문 16일자 <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 한국판 미네르바 스쿨 설립인 조창걸 태재재단 이사장의 말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