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끝까지 읽기

#13,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by 여름지이

드디어 마지막 장이다. 이 장은 앞에 했던 내용을 다시 꼼꼼히 상기시키고, 덧붙여 더 얘기하고, 일러주고, 당부하고... 오지랖 넓은 이웃 아줌마 톤이 가득하다. 요즘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남성 과학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집요함과 친절함이다. 연구실 바깥으로 나와 대중과 호흡하고 글을 쓴다는 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뜻이고 그래서 알려주기 좋아하고 때론 세상일에 간섭도 할 것이다. 한마디로 네트워크 구축에 능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선구자인 칼 세이건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거기다 뜨거운 가슴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집중적으로 다룬 에라토스테네스,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타르코스, 히파티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케플러, 뉴턴, 하위헌스, 샹폴리옹, 휴메이슨, 고더드, 아인슈타인 등도 그러한 인물들이다.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일은 현대 과학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기원전 3세기~ 7세기)의 붕괴이다. 그 융성이 큰 나무로 성장하지 못하고,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일부 기득권층에만 향유되어 결국 폭도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소실되고 만다. 인류 전체가 눈부신 과학 문명에 큰 희망을 걸 수 있었던 유일힌 시기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인류 문명은 잘못된 뇌수술 때문에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총체적인 망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과 사상 그리고 지식 추구의 열정이 모두 어디론가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p667)


결국 걱정쟁이 오지랖 쟁이 이 아저씨는 인류사에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우리 대중들이 이젠 무지에서 깨어나 세계시민이라는 뜻을 가진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의 의미를 우주 시민으로 확장시키고 거듭나야 된다고 주장한다.


양자역학을 함 찔러보게 만드는 김상욱 교수도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나의 코스모스 읽기는 여전히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과학지식은 습득하진 못했지만, 우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받은 듯하고 나에게 주어진 삶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것은 프랑스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역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가 던진 철학적 물음에 과학으로 정답이 아닌 해답을 얻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 물음에 이렇게 선명하게 대답하는 책을 당분간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인류의 고유문화인 과학은 우리의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해 주고 있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물론 과학이라는 것이 완벽한 건 아니지만 분명 세상을 밝히는 훌륭한 도구임은 부정할 수 없다. 과학만이 신성불가침의 절대 진리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오류를 스스로 교정할 줄 아는 과학 고유한 특성을 살리기를 바란다.

보이저 1호가 찍어 보낸 아주 희미하고 미미한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우리들은 그저 겸손하며 사랑하며 도우며 또 살뿐이다.



여기까지 코스모스 읽기는 지난 2018년 가을, 과학 서점 '갈다'에서 '코스모스 끝까지 읽기'에 참여하고 개인적으로 기록한 내용을 다시 갈무리한 글들이다.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로 어지러운 글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은 '부끄러움'의 연속이었지만, 그 부끄러움은 글쓰기가 향상되어서라는 특단의 자기 체면을 걸며 즐겁게 마지막 장까지 왔다.

과학전문 서점이 삼청동 골목에 생겼다 해서 달려갔고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칠흑 같은 어둠에서 서서히 실낱같은 빛이 새어 나올 때의 기쁨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과학책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이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올해는 <코스모스> 탄생 40주년이다.

저자 칼 세이건은 25년 전에, <나의 코스모스>를 쓰기도 한 역자 홍승수 님은 1년 전에 다른 우주로 건너가셨다. 코스모스 다큐도 다시 제작되었고, 부인 앤 드루얀의 후속작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2020>도 나왔다.

여전히 코스모스는 팽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