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 세계
솔로몬의 반지 3 - 수족관 생물들 편
스킨답스를 물꽂이 한 물병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한 마리 작은 물고기가 유영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바깥세상은 불이 꺼지고 병 속 세상만 켜진 듯, 생명이 넘실대는 깊은 바다처럼 보였다. 망설이다 열대어 몇 마리를 사서 넣어 보았다. 어항 조건을 제대로 갖춘 게 아니고 뿌리의 호흡에 기댄 작은 공간이었기에 결국 한 마리만 살아남았다. 한 마리라도 남아서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내 상상의 희생양이 된 죽은 다른 물고기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여기까지만 미안했어야 되는데... 더 미안한 일이 생겨 버렸다. 살아남은 한 마리가 꽤 오랫동안 홀로 잘 살고 있었는데,
수족관에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일종의 균형 감각과 자제력이 필요하다. 애호가의 선의의 개입이 수족관을 크게 해칠 수도 있다. p31
콘라트 로렌츠도 선의의 개입을 한 경험이 있었던 걸까? 한 마리가 자꾸 외로워 보여 다시 두 마리를 더 넣었다가 사달이 나고 말았다. 두 마리가 죽는 바람에 물이 오염이 된 걸 바로 갈아주지 않아 결국 다 죽었다, 아니 죽였다. 오오! 통재라! 가슴을 치며 후회를 했지만 나에겐 죽은 생명도 살린다는 숨살이 꽃, 피살이 꽃이 없다...
어항 바닥에 한 줌의 깨끗한 모래를 깔고, 흔한 수초의 가지 몇 개를 그 모래 위에 꽂은 다음, 조심스럽게 몇 리터의 수돗물을 부어 넣어라. 그리고 그것을 햇볕이 잘 드는 창턱에 놓아두었다가, 물이 맑아지고 수초가 자락 시작하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넣어라. 아니면 유리그릇과 작은 채집망을 가지고 가까운 연못으로 가서 그물질을 몇 번 해보라. 당신은 많은 생명체를 얻을 것이다. p26
아홉 살 어린 콘라트 로렌츠는 기르는 물고기들 먹이로 쓸 물벼룩을 잡기 위해 직접 만든 채집망을 들고 간 담수 연못에서 작지만 경이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호기심은 확대경, 나아가 수수한 현미경을 구해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들었고 자연 연구가가 되는 운명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만다.
그가 전통적 채집망으로 만든 진부하지만 가장 자연적인 연못 수족관은 식물과 동물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지면 청결 유지를 위한 별도의 노력 없이도 생명 공동체가 스스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동일한 조건으로 설치된 두 개의 수조는 시간이 지나면 각각 나름의 세계를 발전시켜 다른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그 수족관 앞에서 가진 명상을 통해 통찰하게 된 것들은 책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많았다고 이 과학자는 고백한다.
언뜻 보기에 평화로운 연못 수족관도 무자비한 생존 경쟁의 잔인한 싸움터다. 수족관의 무법자, 물방개 유충과 애슈나 잠자리 유충! 물방개 유충의 머리 위에 있는 한쌍의 집게 모양 턱을 통해 주사하는 분비액은 사냥감 내장을 모두 걸쭉한 수프로 녹여 버린다. 수족관 안에 물방개 유충이 몇 마리만 있어도 몸집이 큰 동물일수록 며칠 내 남김없이 잡아 먹힌다. 더 끔찍한 건 자기 동족끼리도 서로 공격하여 두 마리 모두 내장이 녹아 죽는다는...
물방개 유충이 무식하게 잔인하다면 잠자리 유충은 지능적이다. 목표물을 정해놓고 잠복을 하기도, 사냥감의 운동을 따르기도, 수 주간 굶었을 때라도 일정한 크기 이상의 동물은 공격하지 않는다. 또 동족이 물고 있는 먹이에는 절대로 입을 대지 않지만 눈앞의 신선한 고기 조각은 즉시 문다.
물고기들의 사랑과 싸움은 유난스럽다. 특히 가시고기, 싸움고기는 다혈질 기질과 격정에 있어서 야생 카나리아를 제외하고는 동물들 중 최고다. 사랑과 정열에 불타는 동물들의 야성적 희열이라 표현했다. 지느러미를 펴면서 발색되는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과 싸움이라는 상반된 상황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이름이 말해주듯 싸움고기는 두 마리 수컷이 만났을 때 벌이는 허세와 자기 과시를 위한 축제는 수족관 최대의 아름다움이지만 상대를 죽임으로써 끝이 난다. 오메, 아름답고 무서운 것들!
가시고기 부성애가 말해 주 듯 물고기는 집을 짓고 알을 부화시키는 것이 암컷이 아니고 수컷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색자리라는 물고기는 암컷과 수컷이 함께 새끼를 돌보기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부부'라고 부를 수 있는 인간적인 관계마저 존재하여 배우자를 구별한다는 것이다. 또 그들의 육아는 어떤가. 아름다운 붉고 푸른 반점이 있는 보석고기는 어미 고기의 등지느러미에 달린 푸른 보석들의 반짝임을 신호삼아 새끼들이 어미 고기 밑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 이때 아비 고기는 온 수조 속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길 잃은 새끼를 찾아 유인하여 입 속에 넣고는 보금자리로 헤엄쳐 구덩이 속에 안전하게 뱉어 놓는다.
로렌츠의 수족관이 보여준 세계는 인간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랑, 싸움, 육아.... 수컷, 암컷이 함께 살아가며 울고 웃는 듯하다. 지구 생명들의 순리인 것을... 내 수족관이 놓친 것들이다. 길이가 긴 공간도 문제였지만 암수를 함께 넣어 살아가도록 했어야 했는데, 좁다고 새끼가 나오면 큰일이라고 암컷만 넣었다. 순전히 생명을 애완으로만 생각한 무지한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마뜩잖게 생각한 개나 고양이 불임 수술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쓸데없는 공상은 그만하고 프리다이버가 되어 그들 속으로 들어가는 꿈이나 꿔야겠다.
* 읽거나 말거나 (너무 귀엽고 재밌는 부분이라 발췌)
언젠가 한 번, 이 길 잃은 새끼들을 모아들이던 보석고기의 수컷이 나를 놀라게 한 일이 있다.(.....) 온 수족관을 돌아다니던 아비는 멋진 지렁이 꼬리를 발견하자 그의 활동을 잠시 멈추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지렁이를 먹는 물고기들은 꼬리 쪽을 좋아한다.) 그는 헤엄쳐 와서 지렁이 꼬리를 덥석 물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커서 금방 삼켜버릴 수 없었다. 그가 한 입 가득히 씹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홀로 수조 속을 헤엄쳐 다니는 길 잃은 새끼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는 전기에 감전된 듯 튀어 오르더니 새끼 쪽으로 헤엄쳐 갔다. 그러고는 먹이가 가득 든 그 입으로 새끼를 무는 것이다. (....) 나는 이 순간 어린 새끼의 생명에 불안을 느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 그 고기는 한 입 가득 문 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물론 씹지도 않았다. 물고기가 심사숙고하는 것을 본 것은 바로 그때 한 번 뿐이었다! 물고기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고 또 그러한 때에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
(..... ) 그는 실로 존경할 만한 방법으로 그 갈등을 해결했다. 그는 입 안에 있는 물체를 모두 뱉아 버렸다. 지렁이는 바닥에 떨어졌다. 새끼 고기도 이미 이야기한 방식으로 무거워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아비 고기는 단호한 태도로 지렁이 쪽으로 가서 서둘지 않고 씹어 먹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 눈은 땅에 얌전히 누워 있는 새끼를 보고 있었다. 그는 먹기를 마치자 새끼를 입으로 빨아들여 집에 있는 엄마에게로 운반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