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가마귀 이야기

솔로몬의 반지 4

by 여름지이


내 창틀 속의 작은 하늘에 갑자기 여남은 개의 검은 물체들이 포탄처럼 위에서 아래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내리고 있다. 돌처럼 무겁게 나무 꼭대기 아주 가까이에까지 떨어져 내려와, 갑자기 날개를 펼쳐서 새가 되곤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폭풍에 휘말린 가벼운 깃털 먼지떨이처럼 높이 솟으면서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p64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갈가마귀 Dohle가 바람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다. 동물에 문외한인 우리에겐 한갓 새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로렌츠는 자연의 거친 힘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행동, 무기체(無機體)의 폭력에 대한 생명 있는 유기체(有機體)의 빛나는 승리라고까지 표현한다. 갈가마귀는 정확한 시간 거리측정, 상승 하강기류 이용 등 바람에 몸을 맡기며 완벽하게 바람을 이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유전적인 능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기 때문에 더 그렇기도 하다.


은빛 눈을 가진 갈가마귀는 곤충을 제외하면 가족생활, 사회생활이 가장 발달된 동물이다. 로렌츠와 갈가마귀의 인연은 순전히 동정심에서 시작된다. 단골로 드나드는 동물 상점 어두컴컴한 새장에 갇힌 새에게 먹이를 주고 싶은 욕망으로 4실링 주고 산 것이 계절을 잃은 무리가 되어 날아가지 않고 집 주변에 뿌리를 박는다. 결과적으로 동물행동학자인 그에게 많은 학문적 성과를 안겨 주었고 무엇보다 커다란 사랑의 대상이 된다.


갈가마귀의 생태는 위에 인용한 새의 모습(만약 눈앞에서 목격하게 된다면)이 바람이 새를 가지고 노는 모습인지 새가 바람을 가지고 노는 모습인지 자칫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사람 모습에서 갈가마귀를 봐야 할지 갈가마귀 모습에서 우리 모습을 봐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서로 닮아있다.


조류, 갈가마귀, 촉

은 로렌츠가 보살핀 인간지향적인 갈가마귀 새끼로 상심할 때 지르는 소리가 촉!처럼 들려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인간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조류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정글북>의 모글리는 자신을 늑대로 자처하지만 성애가 싹텄을 때는 결국 인간 여자에게 끌렸 듯이 포유류는 격리되어 키워져도 성적 대상을 선천적으로 알아본다. 그러나 조류는, 사람에게 키워진 은 자기가 어떤 종류의 새인지 알지 못하고 친교, 성애의 대상도 예민한 시기에 같이 살게 된 존재에게 향했다. 그 예로 정말 기겁할 일이지만 이 성장했을 때 로렌츠네 살림을 도와주던 가정부에게 연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정부가 결혼하여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 때는 그녀를 미친 듯이 수색하여 낮시간에는 그 집에 죽치고 앉아있게 된다. 밤에는 본집으로 돌아오고.

암컷인 이 젊은 가정부를 갈가마귀 수컷으로 여겼다는 것인데, 조류가 동물의 본능인 이성에게 끌리는 교차 법칙이 해당되지 않은 경우다.


그 예는 또 있다. 로렌츠가 사들인 다 자란 갈가마귀 수컷은 주인을 암컷으로 간주하고 침이 섞인 벌레를 열심히 날라 먹이려 했다. 해부학적으로 사람의 입이 음식 들어가는 구멍임을 정확히 알고는 말이다. 만약 입을 벌리지 않으면 귓구멍 고막 깊숙이 뜨뜻한 벌레 반죽으로 채워진다. 갈가마귀들은 새끼나 암컷 목구멍 깊숙이 먹이를 밀어 넣는 습성이 있으므로.... 으으으엇!


갈가마귀 사회의 위계질서

갈가마귀들은 언제나 떼를 지어 날아다니기 때문에 나이와 경험 많은 새가 어린 새들에게 어느 동물이 무서워해야 할 적인지 직접 가르친다. 예를 들어 낯선 동물이 새끼 갈가마귀에게 나타나면 늙은 갈가마귀는 딱 한번 깍깍거린다. 그러면 새끼의 뇌리에는 적과 경고음이 연상 관념으로 박혀 영원히 각인된다. 만약 이런 걸 전수받지 못하면 동료가 약탈자에게 찢기는 모습을 직접 봐야 적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경험 많은 새가 약탈자를 보기만 하면 깍깍거리기 때문에 새끼들은 무서운 경험 없이도 일찍부터 적을 알게 된다? 참 기이한 일이다. 인간사회도 아니고 자연 상태인 갈가마귀 사회에서 교육이 이렇게 중요하다니! 그래서 로렌츠의 14마리 갈가마귀들은 경고해 줄 어른이 없어 고양이가 다가와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여러 번 변을 당한다. 어른이 필요한 이들에게 누가 그 노릇을 해줬을지는 뻔한 일이다. 어느 시점에는 아빠 로렌츠가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정확히 알아내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본인 말로 이건 말이 쉽지 쉬운 일이 아니란다...


위계질서 내에서 서열 싸움은 육체적인 힘만이 아니고 개인적 용기, 자신감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에너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영리한 포유류 못지않다. 갈가마귀 사회의 서열 싸움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닭 사회와 확연히 다른 점은 약자에 대한 태도다. 갈가마귀들은 약자를 전혀 공격하지 않고 바로 자기 아래 서열에게만 잘 흥분한다. 풋풋! 하위자들 싸움에 권력자들의 개입은 사회 구성원의 둥지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암컷은 약혼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수컷의 서열에 오르게 된다. 보수성이 질서유지에는 좋을 수도 있겠다.

~ 계속됩니다 ~


*여기에 나오는 갈가마귀(coloeus monedula)는 우리나라에는 이 학명의 새가 없다. 여러 가지로 보아 한국의 갈가마귀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 -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