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잃은 무리

솔로몬의 반지 5

by 여름지이


갈가마귀의 사랑과 결혼

동물의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 관능적 동기가 주가 된다는 것은 편견이다. 사랑과 결혼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에게는 육체적인 결합보다 훨씬 앞서 약혼? 이 먼저 이루어진다. 갈가마귀나 회색기러기는 태어난 이듬해 봄 약혼이 이루어지고 생식은 또 그다음 해 가능하다. 새끼를 낳기까지는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갈가마귀 수컷의 구애는 특정한 발정 기관, 공작처럼 화려한 깃털, 나이팅게일처럼 특별한 음성 기관도 없어 오직 암컷에게 자기를 과시할 수 있어야 된다. 과시의 행동이 놀랍도록 사람과 흡사하다고 로렌츠는 말하는데 한번 판단해 보시길!


일단 특정한 암컷이 눈에 들어오면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넘치는 힘을 허풍스럽게 드러낸다. 긴장된 상태로 고개를 들고 목을 길게 뽑는 당당한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계속 다른 갈가마귀와 몸을 비벼댄다. 평상시 무서워하던 상위자랑 싸움까지 하면서. 꼭 그녀가 보고 있을 때만 그런다! 그러고는 자기가 점찍은 둥지로 유인하기 위해 높고 날카로운 소리로 찍, 찍, 찍을 연발 한다. 여기서 둥지는 굉장히 상징적이라 꼭 보금자리를 꾸미는 곳이 아닌 그냥 너랑 함께 있고 싶다는 의미다. 그래서 수컷이 소리를 내는 장소는 어두운 구석, 작은 구멍, 굴뚝 등 특정 공간이면 된다. 앞에서 말한 로렌츠 귀에 벌레 반죽을 밀어 넣은 갈가마귀 수놈은 심지어 벌레 반죽이 담긴 그릇 옆에서 그놈의 소리를 즐겨냈다는, 하! 하!


그럼 암컷은 어떤가. 수컷이 지속적으로 암컷에게 시선을 두는 것과 달리 암컷은 아주 짧은 순간 수컷을 봄으로서 ok를 표시하고 다가오는 수컷에게 고개를 숙이고 날개와 꼬리를 떤다. 이 동작은 교미의 허락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영접 의식으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부드러운 복종의 표현이다. 약혼으로 암컷은 서열이 급상승하게 되고 암수는 자기 짝을 위한 일이면 격렬한 투쟁을 불사할 정도로 당당한 자세를 최대로 과시하며 언제나 일 미터 이상 서로 떨어지지 않는 거리로 일생을 함께 한다. 암컷은 수컷의 비단결같이 아름다운 긴 목의 깃털을 빗질해주는 봉사를 하면서. 그들의 애정은 시간이 갈수록 식지 않고 더욱 뜨거워진다.


글쎄, 갈가마귀들의 사랑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1900년대를 산 로렌츠가 요즘 사람들 사랑방식을 본다면 서로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관찰했던 많은 갈가마귀의 결혼 가운데 파경을 맞은 경우는 단 하나뿐이었다는데, 청황, 우적, 좌록, 이름도 멋진 이들의 치정극은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부부의 세계, 못지 않다.


갈가마귀의 소리

앞에서 깍깍은 어른 갈가마귀가 어린것들에게 위험한 상황을 알려주는 소리라 했고 찍찍은 번식기에 구애의 소리였다. 다음으로 주목할만한 소리는 이라는 소리다. 은 사회적 반응이라 할 수 있으며 굉장히 충동적인 행위의 소리인데, 예를 들면 좀비들, 아프리카 초원지대의 스프링벅 같이 묻지마 식으로 아무런 판단 없이 무리에 휩쓸리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강자가 약자 둥지 구멍을 공격해 심각한 매질을 하는 흔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둥지 소유자의 소리는 급격히 고조되다가 점차 소리로 바뀐다. 도둑 잡아라! 쯤 되려나. 그 소리를 들은 주변 모든 갈가마귀들이 역시 크게 소리를 내면서 위협받는 둥지로 갑자기 벌떼같이 몰려들고, 소리는 점점 확장되어 그 소란 때문에 싸움이 묻혀 버린다. 심지어 소란의 장본인 침입자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읍 소리를 내며 침입자를 찾아 헤매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니, 기이하고도 무서운 일이다. 흥분이 식으면 갈가마귀들은 주술에서 풀려난 듯 조용히 사방으로 흩어진다. 이거야말로 사람들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구먼.

약자가 낸 소리의 의도대로 몰려든 갈까마귀 떼들에게 침입자가 흠씬 두들겨 맞는 통쾌한 일도 있다.


큐우 소리는 둘 다 함께 날자는 뜻인데 미세한 차이가 있다. 우리네 삶으로 비유하면, 가 내가 살던 동네나 여행지에서 놀다가 묵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의미라면, 큐우는 장거리 이동, 미지의 세계로 갈 때라고 할 수 있겠다. 철새들은 서식지에서 기분으로 있다가 장거리 비행을 할대는 큐우로 돌아가는 것이다. 먹이를 찾으러 집으로부터 아주 먼 거리에 있는 갈가마귀들, 충동 억제 능력이 없는 이들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기분과 큐우 기분이 수없이 반복돼 관찰하는 사람은 신경과민이 될 정도다. 그러다 큐우 기분이 눈덩이처럼 살살 불어나 결국엔 만장일치로 집으로 향하게 된다. 큐우 기분 참 아련하다.


계절을 잃은 무리

오스트리아 알텐베르크, 콘라트 로렌츠의 박공지붕 주위는 갈가귀들의 안식처였다. 역시 의학, 동물학 연구자인 로렌츠 아버지는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어 갈가마귀들의 정체성을 이렇게 대변해 준다. 우리는 계절을 잃고 고향에 뿌리박은 무리.

그들이 가을날에, 또는 따뜻한 겨울날에 봄의 노래를 부를 때, 그들이 폭풍의 힘으로 멋진 놀이를 할 때, 그들은 눈 속 전나무의 푸르름이나 청명한 겨울날의 굴뚝새 소리가 주는 느낌, 전나무가 희망과 영속의 상징임을 확신시켜 주는 느낌, 그런 느낌들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 p121-


로렌츠 부자(父子)에게 사람과 동물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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