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처녀
파타고니아 바릴로체에서 래프팅을 위해 호텔에서 우리를 픽업한 미니버스는 인근 호텔을 더 돌면서 10명 정도의 인원을 태우더니 근 두시간을 달렸다. 파타고니아의 숨막히는 경치를 보면서 Rio Manso 상류의 래프팅 시작점에 도착하였다. 4 대의 미니버스에서 30여명 정도의 래프터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아르헨티나 사람들이었고 영어를 사용하는 관광객은 호주에서 온 라이언, 이스라엘에서 온 레이, 루마니아에서 온 토마스 그리고 우리 둘이었다.
래프팅은 역시 남자들이 많았다.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아르헨티나는 백인의 비율이 85%에 이를 정도로 많고 원주민과의 혼혈인 메스티조의 비율은 8%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스패니쉬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나를 주시하고 있는 눈길이 느껴졌다. 나를 보고 있던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영어로 "Hi."로 시작하여 그녀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했다. 그도 그럴것이 30여명의 무리 중에서 동양인은 나와 내친구 뿐이었으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왔다는 그녀는 제법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내게 관심을 보였다.
레벨3의 고강도 래프팅을 하면서 근 두시간 이상을 떠내려 가보니 우리를 태우고 왔던 미니버스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래프팅이 좋았냐며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래프팅 시작점까지 오는 내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녀는 16살 이고 지금 오른 쪽에 앉아 있는 남자가 아버지이고 지금 이 곳 바릴로체에는 아버지와 둘이서 휴가온 것이라고 했다. 부모가 이혼하여 엄마와 살지만 자주 아빠를 만난다고 했다. 이즈음 캠브리지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고 런던에서 공부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힘든 래프팅을 마치고 하는 늦은 점심은 배도 고팠지만 엄청 맛있었다. 그 부녀와 함께 점심을 하며 많은 얘기를 했다. 딸은 아빠에게 잘하다가도 자기 남자친구 생기면 아빠는 두번째라고 했더니 그녀는 자기는 아니라며 아빠 팔을 꼭 끼며 아빠 볼에 입맞춤까지 했다. 런던에서 공부하고픈 꿈은 이미 구체적이기 때문에 조금만 더 준비하면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했다.
헤어지며 그녀는 아르헨티나식으로 내게 뺨을 대는 인사를 하고 아빠와 함께 먼저 떠났다. 미니버스 안에서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나도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