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는 가족만 남는다.
Morocco 가는 비행기표를 친구와 산 것은 5개월 전이다. 스카이스캐너에서 가장 저렴한 표를 찾고 하나투어를 통하여 구입한 티켓은 하나투어가 확보한 그룹티켓이었다. 터키항공을 타고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환승하는 것을 100만원 정도에 샀다. 그룹티켓이라 24시간전 첵인 전에는 좌석지정도 안된다.
탑승 직전 게이트 앞 데스크에서 나와 친구의 이름을 부른다. 부치는 짐에 넣어서는 안되는 것을 넣었나 하는 걱정이 잠깐 뇌리를 스친다. 이코노미석이 만석이라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준단다.
왜 우리를? 웬 재수! 웬 대박!!
이스탄불까지 가는 10시간 반의 야간비행을 발뻣고 잔다는 것이 신난다. 이번 여행은 시작이 좋다. 터키항공 보잉 777 거의 반토막이 비즈니스석이다. 머리에 흰 빵덕모자와 흰 옷을 입은 영락없는 요리사 Chef 가 저녁 메뉴를 일일이 주문받는다. 스튜어디스가 받지를 않고... 비행기 안에 과연 요리하는 주방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한국시간으로 새벽 두시가 넘어 만찬을 하고 나니 스튜어디스가 일일이 자리를 깔아준다. 여인이 펴주는 침구에서 자본 기억이 있나를 더듬어본다...
Turkish Airlines 은 13대의 화물기를 포함하여 무려 335대의 비행기를 갖고 있다. 대한항공이 160여대, 아시아나가 100여대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의 노선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의 주기장에는 빨간 꼬리날개에 하얀새가 그려져 있는 Turkish Airlines 의 비행기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이즈음 틈새만 보이면 밖으로 나돌다 보니 책상서랍에 앞으로 사용할 비행기 티켓이 두개는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이즈음 부쩍 쇠약해진 아버지가 항상 마음에 걸린다. 매주 한번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병원도 모시고 가야 하는데... 병원 일정은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고 동생과 나누기도 하지만, 수요일 빈대떡과 냉면을 함께 하고 바로 옆 카페에서 치즈케이크와 에스프레소를 드시는 것이 유일한 주중의 외출이다. 매주 일요일 점심은 동생이 함께 한다. 2주를 건너뛰지 않도록 할아버지 챙겨 달라고 결혼한 딸한테 부탁을 한다. 부탁할 사람이 너 밖에 없다며...
관계가 중요하다.
살면서 무지하게 많은 관계를 맺는다. 가족처럼 내 의지와 상관 없는 어쩔수 없는 관계도 있고,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서 공부했다는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도 있고, 사회생활 하다 맺은 이해관계도 있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관계도 많다.
아버지를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가족만 남는다.
아버지는 그것을 몰랐던 것일까?
애증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옛날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냥 반대되는 말을 붙여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좌우, 위아래, 춘추, 친소, 강약, 냉온 등등 처럼...
나와 아버지의 지난 세월이 애증의 관계였다. 항상 나를 짓누르고 있는 이 무게감은 다시 회복할 기회가 없어 보이는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이다. 이미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노쇠해졌지만 항상 옆에는 새어머니가 있다. 내가 어느 이상을 아버지와 함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는 땅에 묻었고, 백일도 안되어 새장가간 아버지와는 계속 멀어졌을 뿐이다. 45년이 지났고 나도 내년이 환갑이건만 관계가 회복된 적도 없고 앞으로는 시간도 없다.
탠지어에서 카사블랑카 가는 기차 안에서 깨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