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여행 출발 전 35일
미국의 많은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창의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였다. 그들은 창의적 성격의 특성으로 다섯 가지를 강조하였다. 애매모호함에 대한 참을성, 인내,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 기꺼이 모험을 하려는 정신,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 이다. 이 중에서 특별히 눈에 띠는 것은 애매모호함이다. 애매모호함은 새로운 사실을 접하거나 낯선 환경에서 느껴진다. 사실 본능적으로 불편하고 긴장된다.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하고 초조해한다. 심지어 아드레날린이 나와 심장이 두근거린다.
애매모호함에 대한 참을성을 키우고 싶다면 여행을 떠나라.
여기서의 여행은 우리가 흔히 하는 패키지 단체여행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개인이나 두세 명의 개별여행을 의미한다. 여행사에서 주로 파는 단체여행들은 거의 모든 일정과 관광이 이미 일목요연하게 정해져 있다. 여행객에게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은 추가로 돈을 내야하는 옵션투어 정도이다. 심지어 음식점에서 무엇을 먹을지도 이미 정해져 있다. 어려운 메뉴판을 들여다 볼 기회조차 없다. 이런 여행은 금방 익숙해져서 잠깐의 애매모호함도 느끼기 어렵다.
완전한 개인여행은 모든 것이 선택이다. 모든 관련 정보가 다 있다면 선택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택은 충분한 정보 없이 정해진 시간 내에 해야만 한다. 따뜻한 잠자리, 맛있는 음식과 편한 이동을 저렴한 비용으로 원한다면...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된다. 그러나 내가 찾는 가치가 항상 돈의 액수와 정비례하지 않기에 본능적으로 값싼 큰 가치를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다.
개별 여행은 항상 애매모호함 속에서 진행된다.
창의적인 생각은 보통 세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 의식적으로 문제와 씨름하는 준비 단계(preparation), 문제에 아무런 의식적 집중을 하지 않은 채 놔두는 부화단계(incubation), 추후에 논리적으로 정당화되는 조명단계(illumination)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인식하고 한동안 문제를 잊고 있어야 한다. 다른 일을 하면서 잠시 방안의 결정을 미루고 있어야 한다. 빨리 한방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급함이 아니라 시간여유를 두고 먼저 문제와 씨름하여 문제를 인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끝내지 않더라도 미리미리 시작해야 한다.
지금 나의 문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노르웨이 여행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창세기 이래로 이렇게 잘 살아 본 적이 없다. 역사상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Viking 이다. 춥고 어둡고 배고픈 땅에서 굶어 죽느니 저 무서운 바다를 건너 프랑스, 영국 뿐 아니라 지금의 캐나다 미국까지 Viking이 건너갔단다. 건너가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우리가 다 안다. 워낙 유명했으니...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20세기 들어 독립하기 전에는 스웨덴의 지배를 오래 받았다. 러시아와 대적할 만 했던 강국 스웨덴이 보기에 인구가 스웨덴의 반 정도인 노르웨이는 가난하고 무식한 바닷가 해적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1970년대 노르웨이 앞바다 북해에서 석유가 발견되었다. 산유국이 된 것이다. 석유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거의 10만불에 육박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이다. 잘사는 동네에 가면 물가가 비싸다. 비싼 물가는 그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모든 본능적 욕구(좋은 침대, 근사한 음식, 편한 이동)를 참을 수밖에 없으니...
장거리 이동(21시간)을 하고 나면 일단 쉬어야 한다. 특히 시차(7시간)라도 크게 차이가 나면 적응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항공기 조종사는 장거리 비행을 하면 2박3일내지 3박4일을 쉬고 다시 조종간을 잡는다고 한다. 그래서 조종사의 한 달 평균 비행하는 시간은 40-70시간 정도란다. 대형 항공사 기장의 년봉이 억을 훌쩍 넘는다고 하니 일반 사람들은 겨우 그 시간 일하고 그렇게 많이 받냐고 부러워 한다.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도 힘들지만 이코노미 좌석에 10시간 이상을 앉아 있는 것도 매우 힘들다. 얼마나 힘들면 이코노미좌석증후군이란 병명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장거리 비행 후 첫 숙소를 예약할 때 2박을 하는 것이 좋다. 온전한 하루 동안 충분한 휴식과 시차적응을 해야 한다.
나의 첫 기착지인 크리스티앙샌드의 숙소를 찾아보았다. 그 유명한 부킹닷컴으로... 대도시인 오슬로와 베르겐보다 저렴하겠지만 보통 일박에 10만원이 넘는다. 딱 하나 7만원 정도의 호텔이 있으나 사진으로 보나 방문객의 평가도 인색할 수밖에 없다. 선뜻 클릭을 못하고 일주일을 보냈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보니 숙소비용에 놀라 매일 캠프장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고 한다. 그것도 3만원이나 주고... 허츠의 폭스바겐골프를 렌트했으니 나도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할까 했다. 1인용 텐트의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100만원이 넘는 명품텐트에서 7만원짜리 중국산텐트까지...
한 번도 이용해보지 않은 에어비앤비 앱을 설치하였다. 소위 민박을 찾은 것이다. 이미 자고 간 많은 사람들이 솔직한 평을 무수히 적어놓았다. 숙소의 실질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경제시대에서 가장 핫한 비즈니스가 에어비앤비와 우버라고 한다. 모든 민박집이 와이파이가 된다. 그리고 집주인과 함께 생활하니 심심하지도 않을 것 같다. 부엌을 사용할 수 있고 주차도 용이하고 가장 중요한 가격도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이번 여행에서 가능하면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여 민박을 찾고 없으면 텐트를 치기로 마음먹었다.
점점 애매모호함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