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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n 24. 2017

참 험하고 대단한 인생도 많다.

난생 처음 시에라리온 아줌마를 만나다.


몇 밤을 노르웨이에서 잤는지 모르겠다.

여덟밤을 잤나?

어쨌든 남북으로 긴 노르웨이의 중간쯤인 트론헤임에 도착했다. 동서로 비틀대며 주로 'National Tourist Routes in Norway' 를 지나갔다. 마음속에는 항상 북쪽으로 가야한다는 약간의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다.

겨울 오로라 관광지인 트롬쇠까지는 못간다해도 바이킹시대의 노르웨이 수도였다는 이곳 트론헤임까지는 아무리 게을러도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트론헤임은 인구 20만 정도로 노르웨이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다. 큰 도시에서의 운전은 별로 반갑지 않지만 노르웨이 남쪽 끝 크리스티앙샌드에서 시작한 순례길(?)의 반환점으로 삼았다. 내일은 가볍게 트론헤임을 둘러보고 모레부터는 다시 내려가야 한다. 여덟밤을 자며 올라온 길을 세밤을 자며 내려가야 하다니...

노르웨이에도 고속도로가 있다고는 하나 아직 타보지 못했다. 워낙 산길과 해안길을 번갈아 헤매다보니... 우리나라 국도와 지방도에 해당하는 왕복2차선 도로를 1400여키로를 달리면서 느낀 것은 차가 참 없다는 것과 참 깨끗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망이 좋은 요소요소마다 화장실이 있는 휴게소가 있거나 최소한 피크닉 테이블이 있다. 아침을 숙소에서 가볍게 해결하고 운전을 시작하면 이런 피크닉테이블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다. 오늘도 한적한 휴게소에서 진짬봉을 가스버너로 끓여 한참 먹는데 큰 관광버스가 서더니 한 무리의 관광객을 풀어놓는다. 핫도그 두개와 음료수캔을 든 할아버지가 내 테이블로 오더니 합석하잔다. 바로 할머니 둘이 따라 붙는다. 덴마크에서 온 패키지관광객이다. 짬뽕국수를 후루룩거리면서 물었다. "옛날에 덴마크가 노르웨이 지배하지 않았니?" 200년전에 그랬단다. 그리고 언어가 비슷해서 서로 자기말 하면서도 서로 알아듣는단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 정도 되나보다... "15년전 내 기억에 덴마크도 물가 비싸지만 노르웨이가 더 비쌌던 것 같은데 지금도 그러냐?" 덴마크 와인 한병값으로 여기서는 한잔밖에 못한단다. 그리고 독일의 와인 한병값으로 덴마크에서 한잔 밖에 못한단다. 아주 쉽게 설명해준다. 진짜 그런지 모르겠지만...

트론헤임의 Airbnb 숙소 호스트(민박집주인)는 Janet 이다. 오후6시 정각에 아파트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더니 시간 맞춰 나와 있다. 다행이다. 집 찾는 것이 제일 어렵다. 구글맵이 근처까지는 안내하는데 마지막순간에 전화없이는 서로 만나기가 수월치 않다. 아파트 8층이라 전망이 좋다하여 선택했는데 Janet은 아프리카 흑인아줌마다. 일단 주차하고 짐부터 옮기고 맥주로 한숨 돌리며 물었다. 궁금한거 전부...

Janet 의 고향은 시에라리온이란다. 내가 시에라리온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에볼라 창궐지역이었다는 것 뿐이다. 내 평생에 시에라리온 아줌마와 만나게 될 줄이야... 1999년 내전이 한창일 때 세살난 아들과 남편이랑 UN 난민으로 이곳에 왔단다. 부부 모두 시에라리온에서 간호사교육을 받았단다. 남편은 UN 소속의 간호사로 전세계를 돌아 다니며 근무한단다. 최근에는 분쟁지역인 남수단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미국 워싱턴 DC 에서 대기중이란다. 마흔두살인 Janet은 18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단다. 오늘부터 금토일 3일은 밤근무라 저녁 8시까지 병원에 나가야 한단다. 3일 밤근무, 이틀 낮근무 그리고 이틀 쉰단다. 일년에 쓸 수 있는 휴가가 5주인데 자기는 몰아서 크리스마스때 고향에 간단다. 1965년에 지었다는 이 아파트를 5년전에 샀는데 지금 많이 올랐다고 좋아한다. 시에라리온에 집이 세채인데 두채는 세주고 한채는 부모님이 산단다. 한 이년 뒤에는 이집 팔고 고향 시에라리온으로 갈 생각이란다.

참 험하고 대단한 인생도 많다.

침실이 두개인 아파트 테라스에 앉아 나 혼자 와인마시며 여명을 즐기고 있다. 자정에...
오늘 이곳 트론하임의 일몰이 11:4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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