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대비도 생존본능이다.
동물에게 생존이 가장 강한 본능이다. 인간도 동물이다. 노후대비란 것도 생존 본능의 일환이다. 그러나 인간은 계속 진화하여 의식(consciousness)이 있는 유일한 종이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짐 속에 두 권의 책을 넣었다. 소설 '남한산성'을 비행기 안에서 다 읽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왕이 신하들에게 묻는다. 성문을 굳게 닫아 걸고 버틴지 한참되어 군사들에게 배급하는 식사도 줄여할 지경이다. 성문을 열고 나가 항복하고 목숨을 구걸할 것이냐? 계속 버티다 굶어 죽거나 오랑캐의 칼에 죽을 것이냐? 신하들도 결사항전파와 화친파로 갈린다. 이는 답이 없는 질문이다. 결국 자신이 선택하면 될 일을 쓸데없이 매일 신하들에게 묻는다. 모든 문제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답이 많은 것과 답이 없는 것은 일맥상통 한다고 하지만 답이 많아서 어떤 답도 가능할 경우도 있지만 답이 없는 문제도 있다.
생존본능이 강한 인간인 왕은 항복한다.
세자를 볼모로 오랑캐땅으로 보내면서...
만 90세가 되는 아버지가 만날 때마다 "이렇게 살아서 모하냐?" 고 내게 묻는다. 마땅한 답이 없어 나는 가만히 있지만 아버지는 내심 "나 죽겠어. 어떻게 좀 해줘." 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고 계신 것이다. 해결책이 없는 요구를 매번 내게 하신다.
답이 없는 질문이나 해결책 없는 요구를 주위사람에게 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의식이 없는 것이다. 답이 없는 질문이나 해결책 없는 요구는 답하거나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답이 없는 질문은 자신만이 정할 수 있고, 해결책이 없는 요구는 자신이 포기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직관이다.
직관은 의식의 결과다.
의식이 없으면 직관도 발달하지 못해 자꾸 남에게 의지한다. 이런 사람의 중요한 특징이 남탓을 하는 것이다.
의식은 지각(perception) 과 인지(cognition) 와는 다른 상위 개념이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시간은 인지가 작동하는 때다. 이해가 안되다가 예제와 연습문제를 풀거나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깨닫는 것이 지각이다. 응용을 하려면 완전한 이해가 되어야 한다. 이 단계가 바로 의식된 경우다.
열역학의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수식을 써가며 강의하면 열심히 수강한 학생은 강의시간 중에 인지한다. 집에 가서 열심히 과제인 연습문제를 풀다 보면 어렴풋이 이해가 되면서 지각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엔트로피 증가가 피할 수 없는 것이란 것을 이해하고 의식하면 노화나 죽음도 받아들일 수 있다.
6개월전 모로코 여행때 들고간 '의식의 기원'은 어려운 책이다. 이제서야 의식을 지각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