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함이 명료함으로 바뀌는 과정
총 13일의 노르웨이 자동차 여행 중 9일째에 접어들었지만 정리할 마음이 생겼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제대로 느끼려면 캠핑카 여행을 해야 한다. 전망 좋은 곳을 지나다 보면 밤을 보낸 캠핑카를 쉽게 볼 수 있다.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번호판을 단 캠핑카도 흔하다.
혼자나 둘이라면 렌터카를 이용한 자동차 여행을 강추한다. 캠핑카처럼 아무데서나 잘 수는 없지만 샤워실과 공용 싱크대가 갖춰진 캠핑장을 운전 중에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캠핑장은 Hytte라는 통나무집도 갖고 있다.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는 것도 가능하지만 하고 싶지는 않다. 6월 말 하지인데도 밤에 온도가 10도 아래로 내려가 춥고, 워낙 비가 자주 내려 빗속에서 텐트를 치고 걷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렌터카는 70% 정도가 수동기어 차량이다. 자동 기어 차량은 미리 요구해야 하고 가격도 25% 정도 비싸다. 노르웨이의 도시나 터널을 통과할 때 정차 없이 차량을 인식하여 통행료를 걷는 시스템이 있다. 렌트비용을 정산할 때 이 비용도 정산되는 것 같다. 공항 렌터카 사무실에서 차를 받자마자 온 문자메시지에 비용이 과다 청구되어 있길래 서류를 보니 하루에 톨비 100 크로네와 연료를 가득 채워 반납하지 않은 경우를 대비한 요금이 합산되어 있었다.
살인적인 노르웨이 물가에 비해서는 차량 렌트 가격이나 기름 가격은 그렇게 높지 않다. 휘발유 가격이 1 리터에 보통 15 크로네이니 우리 돈으로 2000원 정도이다. 내가 빌린 VW 골프 TSI의 연비가 20킬로나 나온다. 노르웨이 국도의 제한속도가 시속 80킬로이다 보니 소위 연비 좋은 경제속도로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국도를 달리다 보면 30,40,50,60,70의 속도제한 표지판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방금 제한한 속도를 해제한다는 표지판도 항상 있다. 그렇다면 70의 속도제한이 해지된 구간, 즉 아무런 제한이 없어 보이는 곳의 제한속도가 80이라는 것은 며칠 지난 후 관광안내소에서 물어보고 알았다. 노르웨이의 도로에서 경찰차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속도위반이나 추월 위반 등의 벌금이 어마어마하단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 값만큼 나갈 거라고 Molde의 민박집주인 Ellisif 가 얘기해줬다. 그러면서 자기 친구들의 면허취소당한 얘기와 벌금에 대한 얘기를 전설처럼 들려줬다. 왠지 오싹하다. 가끔 카메라가 그려진 표지판이 있는데 이는 과속단속 카메라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트론헤임에서 노르웨이의 고속도로인 E6를 잠깐 타보았다. E6는 스웨덴 말뫼에서 시작하여 오슬로, 릴리함메르, 트론헤임을 지나고 트롬쇠는 약간 옆으로 비켜 노르웨이의 최북단까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도로이다. 노르웨이를 빨리 남북으로 종단하겠다면 이 도로만을 계속 타면 된다. Trondheim의 민박집주인 Janet 은 고속도로의 최대 제한속도가 90 이란다. 아무런 표지가 없어도...
터널을 들어가기 전에 카메라 두 개가 겹쳐 그려진 표지판을 보았다. 두 개의 카메라는 구간단속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터널 입구와 출구 오른쪽에 하얀 카메라가 서 있다. Janet에 따르면 카메라가 노르웨이에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얀 카메라와 까만 카메라가... 까만 카메라는 속도만 감시하지만 하얀 카메라는 속도뿐 아니라 차 안에 몇 명이 타고 있는지 누가 운전하고 있는지를 전부 찍어 둔다고 한다. 사고가 나거나 범죄자를 잡기 위해...
잠깐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몇 번의 automatik toll을 지나갔다. 오른쪽에 요금이 쓰여있는 표지판을 보니 요금이 비싸다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toll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서 있는 기둥에서 초록색 불이 깜박인다. 제대로 지불됐다는 것이다. 만약 빨간불이 반짝이면 제대로 통행료가 지불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새로운 표지판이 보인다. 문제 있으면 전화로 연락하라는...
소득이 높다는 것은 길에 다니는 자동차를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찌그러지거나 아주 낡은 차를 이곳에선 볼 수 없다. VW, Toyota, Ford 가 주종이지만 BMW, Audi와 Benz 가 아주 흔하게 널렸다. 이즈음 세계적으로 핫한 자동차인 Tesla의 Model S를 하루에도 몇 번씩 심심치 않게 지나친다. 10만 불에 육박하는 전기 스포츠카가 말이다.
노르웨이 여행 중에 내비는 구글맵을 사용했다.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하여 놓으면 오프라인에서도 쓸만하다. 길을 벗어나면 다시 찾아준다. 도심이 아닌 지역에서는 길을 벗어날 일도 거의 없다. 가끔 이동 중에 인터넷 연결이 필요할 경우 free wifi hotspot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이 있는 관광안내소, 주유소에 있는 7 Eleven, 큰 식품매장인 Coop mega, 쇼핑몰 안에서 가능하다. 아직까지 데이터 무제한 인터넷 연결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
내비를 따라가다 보면 길이 끊기고 바다와 만난다. Ferry 선착장인데 앞차의 뒤를 따라 줄 서서 기다리면 된다. 보통 20분 간격으로 ferry 가 운행된다. 전광판에 시간도 잘 보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을 가려면 화장실 문을 여는데 10 크로네 동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좀 참으면 된다. Ferry를 타는 시간도 거의 20분 정도라 올라탄 후 카드나 현금으로 요금징수원에게 지불하고 ferry의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여름에만 운행하는 유람선을 겸한 ferry 가 아니면 차 한 대 건너는데 거의 100 크로네 미만이다.
엄청난 터널들을 만난다. 따로 돈 받는 터널도 드물게 있다. 무지하게 긴 터널, 나선형으로 고도를 높이는 터널, 중간에서 갈라지는 터널, 일차선인 터널, 해저터널 등 터널의 종류와 개수에서 신기할 정도이다. 공사 중인 터널도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석유로 부자가 된 노르웨이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열심히 하고 있는 듯하다. 참고로 노르웨이의 부가가치세는 무려 25%이다.
할리나 BMW 등의 오토바이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우중에 쫄딱 비를 맞으며 다니는 오토바이와 양쪽에 온갖 짐을 매단 자전거 여행객도 가끔 마주친다. 대단한 열정이다. 좁고 아주 꼬불꼬불한 산길에서 큰 관광버스를 마주친다. 이렇게 좁은 길에서 만나면 난감할 수 있는데 앞뒤를 잘 살피면 간신히 교행 할 수 있는 여유공간이 항상 마련되어 있다. 이런 좁은 길을 관광버스, 큰 캠핑카도 잘 다닌다. 트레일러와 버스 면허가 있는 내가 봐도 그들의 운전은 예술이다.
애매모호함이 명료함으로 바뀌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