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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Sep 06. 2017

내비게이션은 항상 가장 빠른길을 안내한다.

인생은 시간이고 시간은 돈일까?


뻔히 아는 곳을 갈 때도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을 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눈 감고도 갈만큼 아는 길이라도 새로 생긴 과속카메라를 알려 주거나 마라톤이나 집회시위 등으로 차단되거나 교통사고 발생 등으로 우회할 경우를 대비할 수 있다. 그리고 도착시간을 항상 알 수 있다.

내비게이션은 항상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한다. 간혹 설정에서 최단거리나 무료도로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컴퓨터가 알려주는 최적경로의 기준은 시간이다. 인생은 시간이고 시간은 돈이다. 그러니 이동에 가장 짧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이 당연하다. 가장 빠른 길을 이용하고, 그 길을 가능한 빨리 달려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달리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운전대만 잡으면 많은 사람들이 카레이서로 돌변한다. 전방주시를 태만하면 안된다. 경치 좋은 길을 달릴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경치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방학의 마지막 토요일 아침에 나는 속초 동명항에 있었다. 교회 주차봉사위원회 여름수련회를 마친 참이다. 서울까지 세시간이면 간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준다. 최근 개통한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다시 요청합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경로를 무시하고 미시령 옛길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예전에는 속초와 서울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던 미시령길이 미시령터널과 새로 개통된 고속도로로 인하여 버려진 길이 되었다. 사람들이 자주 이용 안하다 보니 길가의 무성한 잡초들이 포장도로까지 마구 침범해 있다. 미시령 옛길은 어느새 자전거 우선도로가 되어 있었다. 도로 가장자리에 청색줄이 그어져 있고 곳곳에 자전거 우선도로임이 표시되어 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조심조심 운전했다. 자전거가 우선이니...

미시령 정상에 도착했다. 분명 휴게소 건물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철거된 듯... 간이화장실만 두칸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다. 흡연금지라는 스티커만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주차장에는 경로를 벗어난 제법 여러대의 자동차가 있다.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날씨가 좋아 동해바다와 속초시 전경이 아주 잘 보인다. 울산바위 귀퉁이가 아직 녹음이 한창인 숲사이로 보인다. 이 멋진 경치를 예전에 분명히 보았다. 미시령 정상에 여러번 왔었으니... 아마도 미시령터널이 개통된 이후로는 보지 못한 것같다.

새로운 길은 넓고 빠르다. 새로운 길이 뚫리면 당연히 새길을 이용한다. 그동안 애용하던 길은 옛길이 되어 버린다. 옛길이 갖고 있던 모든 가치와 정취는 순식간에 없어진다. 옛길에 있던 맛집이나 상점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 미시령의 휴게소처럼...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다시 요청합니다."

이 소리가 다급하게 들리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가야할 길을 벗어났다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기차가 경로를 벗어나면 탈선사고고 비행기가 경로를 벗어나면 납치된 것이지만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경로를 벗어나면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이 나이에 여유마저 없다면 슬픈 일이다.

경로를 벗어날 마음의 여유가 있어 푸른 동해바다와 어우러진 속초시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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