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an 12. 2018

올라 갔으니 내려가야 한다.

젊고 잘생겼다. 나도 그 땐 그랬다.


사람들은 끝을 보고 싶어한다.
나도 사람이라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최남단 골프장이 있는 Gansbaai 에 3일을 자면서 하루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땅끝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땅끝은 Cape Agulhas 이다.

아프리카 최남단의 도시 Agulhas, 그리고 땅끝 Cape Agulhas 와 주변의 등대를 보러 길을 나섰다. 구글맵에서 거리는 90키로에 한시간 15분 걸린단다. 운전하고 가는 길에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을 가르키는 표지판이 계속 나온다.

1849년에 처음 불을 밝힌 등대는 꼭대기에 올라가 볼 수 있다. 71개의 steps 이라는데 계단이 아니라 거의 똑바로 세워져 있는 4개의 사다리를 차례로 하나씩 올라가야 한다. 처음 세개는 거의 80도로 세워져 있고, 한쪽에 난간손잡이가 있다. 마지막은 85도 이상으로 세워져 있는 진짜 사다리다. 심지어 내 무게때문에 출렁거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사다리는 한명씩만 오르라고 되어 있다. 더 나이들면 이런 등대구경도 못하겠다고 생각하며 간신히 올랐다. 다 오르니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문을 열고 나서니 엄청난 바람이 장난아니게 분다. 약간의 고소공포증도 있는데 바람에 날릴까봐 덜덜거리며 간신히 한바퀴 돌아보았다.

등대 꼭대기에 3살도 안되어 보이는 아들과 함께 젊은 동양인부부가 있었다. 옷차림이나 말투가 중국인 같았다. 카메라로 연신 사진을 찍으며 하나라도 놓지지 않고 다 보려는 젊고 의욕적인 아빠가 있었다. 앞장서서 가족들을 아프리카 남쪽 끝으로 데려왔을 것이다. 많은 것을 아들과 아내에게 보여주느라 이 꼭대기까지 올랐으리라. 지금의 이 광경을 평생 기록해 놓으려고 뭉치가 큰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러댄다. 1992년 처음 가족과 함께 미국을 여행하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젊고 잘생겼다. 나도 그땐 그랬다.

올라 갔으니 내려가야 한다.

오르기도 힘들고 무서웠지만 내려 가기도 쉽지 않다. 원수를 만난다는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외나무사다리다.

한명씩 타야 하는 사다리를 저 아이가 어떻게 올랐을까 궁금하다. 젊은 아빠가 아들을 앞에 한손으로 안으려 한다. 아이는 무서워 머뭇거리고 아빠는 빨리 안기라고 재촉을 한다. 간신히 아빠와 아이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 젊은 엄마가 다음 차례인데 밑에서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서를 뺐겼다. 한 세 명이 한명씩 오르는 동안 젊은 엄마 뒤에 서있던 나는 머쓱해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중국이란다. 예의상 나더러 어디서 왔냐고 되묻는다. 한국이라고 하고 중국 무지 큰데 어느 도시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뻬이징이지 하는데 그 표정이 “나 뻬이징 사는 사람이야 !” 하는듯 하다. 내 뒤에 서있는 내 친구까지 드디어 눈길을 주더니 너네 둘이서만 여행하는 것이냐고 의아한듯이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가족도 없이? 하면서 얼굴표정이 영 아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같기도 하고 못볼 것을 본 표정 같기도 하고...

안되겠다 싶어 내가 웃으면서 설명을 했다.

“We are not gays. We travel to play golf in Africa.”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나 상상을 남에게 들켰을 때 지을수 밖에 없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러냐고 답하더니 서둘러 사다리를 내려가 버렸다.

등대에서 제법 떨어진 Cape Agulhas 까지 걸어 갔다. Cape Agulhas 는 인도양과 대서양을 가르는 경계이다. 역시 땅끝의 표식과 기념조형물이 있다. 바다의 색이 거의 옥색이다. 바람도 많이 불어 하얀 파도가 땅끝 앞의 바위를 때린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땅끝에 있었다. 땅끝 표식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약간 기다려야 할 정도다.

사실 땅끝에 별 것 없다. 우리나라 해남 땅끝에도 별 것 없듯이... 그래서 사람들은 땅끝 치장을 하고 스토리를 만든다. 포르투갈의 서쪽 끝이 유럽대륙의 서쪽 땅끝이라고, 우슈아이아가 남미 대륙의 땅끝이라고, 여기 Cape Agulhas 가 아프리카 대륙의 끝이고 여기서 인도양과 대서양이 나뉜다고... 인도양 물이나 대서양 물이나 다 똑같다. 인도양이니 대서양이니 하는 이름도 사람들이 붙여놓았을 뿐이다.

Gansbaai 로 돌아오는 길에 Agulhas National Park 를 지난다. 비포장도로를 한창 신나게 달리는 중에 멀리 이상한 물체가 보인다. 가까이 와보니 타조 댓마리가 길을 건너고 있다.

역시 여기도 아프리카다.

등대 위에서 사실은 엄청 떨고 있다.
처음 세개는 이정도
마지막 사다리
땅끝과 Ocean divide
길 건너는 타조 가족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그렇게 키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