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an 11. 2018

나는 그렇게 키웠다.

나는 좋은 아빠라 밥 얻어 먹고 산단다.



벌써 재작년 가을에 결혼한 딸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많다. 둘은 아직 신혼이라 자연스런 스킨십을 서로 아무데서나 가끔 한다. 내 눈에 그들의 스킨십이 보이면 난 영 어색하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친정엄마의 눈에는 자신의 딸과 사위가 서로 사랑하고  특히 딸이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은지 모르겠으나 솔직히 난 아니다.

딸은 항상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엄마보다 나와 먼저 상의했다.(딸이 동의해 줄지는 모르겠다.)

딸이 기저귀 찰 만큼 어릴 때 그 기저귀 내가 무수히 손수 갈아 줬다. 왼손으로 두발 모아 쥐고 오른손으로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 주고 베이비 파우더 뿌리고 새 기저귀 채워주기를 엄청했다. 이뻐서 자발적으로 했다기 보다는 18개월 아래인 남동생을 배에 넣고 있는 아내가 워낙 힘들어 해서...

사람이 나이들어 혼자 대소변 못가리면 누구나 기저귀 찬다. 그 기저귀는 누가 갈아줄까?

딸의 똥기저귀 갈면서 그런 생각도 했다. 내가 늙어 기저귀 차면 이 딸이 커서 나중에 갈아줄까 하는...

1993년 2월 말이었다. 딸은 딱 만 다섯살이 되었다. 온 가족이 미국에서의 일년 연수과정을 마치고 눈 덮인 펜실베니아 State College 를 떠나 LA 로 가는 중이다. LA 에서 하와이 거쳐 귀국한다. 미국에서 산 소나타에  온갖 캠핑장비 싣고 세번째 미국 횡단 중이었다. 겨울이라 일단 따뜻한 텍사스로 내려갔다가 서쪽으로 갈 계획이었다. 주로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텍사스, 뉴멕시코, 아리조나, 네바다 거쳐 캘리포니아로 들어간다. 텍사스 남서쪽 끝에는 Big Bend National Park 가 있다. 국립공원 남쪽 경계는 그 유명한 Rio Grande 강이고 강 너머는 멕시코다.

국립공원 캠핑장에 4인용 텐트를 쳤다. 텐트 옆 피크닉 테이블 위에 저녁을 해먹은 코펠을 포함한 온갖 도구들을 놓아뒀다. 문제는 밤에 발생했다. 4인용 텐트의 양쪽 가장자리에 나와 아내가 눕고 가운데 딸과 아들을 누였다. 항상 딸이 내 옆이다. 어린 아들은 엄마 껌딱지 였으니...

한밤이었는지 새벽이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자다가 바람이 무섭게 불어 잠이 깼다. 테이블 위에 놓아둔 코펠들이 날아가는 것 같다. 어찌나 요란스럽게 부딪히며 울어 대는지... 코펠들을 포기했다. 날아가든지 말든지.


세찬 바람이 계속 부는 것이 아니다. 바람소리가 강해졌다 약해졌다를 불규칙적으로 반복한다. 바람소리가 어찌나 무섭게 세졌는지 이제는 텐트가 날아갈 것 같다. 텐트가 날아갈까봐 발을 뻗어 좁은 텐트의 구석을 붙잡았다. 감히 텐트 밖으로 나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텐트가 날아갈까봐. 이런 소란 속에 딸은 내 겨드랑이로 파고 든다. 무서운거다. 내 겨드랑이에 몸을 파묻고 딸은 바람소리의 강약과 함께 떨고 있었다. 멀리서 바람 오는 소리가 커지는 것과 딸의 몸이 무서워 떠는 것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 모든 움직임이 내게 느껴진다. 나는 팔로 겨드랑이 속의 딸을 꼭 조였다. 혹시라도 텐트와 함께 날아가더라도 내 몸에 붙어 있으라고...

무서워 바들바들 떨던 딸의 떨림을 나는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무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팔로 겨드랑이를 꼭 조이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키웠다.

아내가 푸념처럼 가끔 하는 소리가 있다. 나는 결코 좋은 남편 아니란다. 절대로...

그러나 애들한테는 좋은 아빠란다. 아내도 인정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내가 내 밥 챙겨준단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딸에게 아빠인 나보다 더 좋은 남자가 생겼다는 것을...

p.s. 아들이 만약 내 앞에서 며느리에게 가벼운 스킨십을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 당시 그랜드캐년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