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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13. 2018

남아공에서 렌터카 운전

애매모호하고 어색한 상황이다.


케이프타운 공항에서 차를 빌려 운전한 지 꼭 8일 되었다. 사실 자동차 통행 방향이 한국과 반대인 곳에서 손수 운전을 한다는 것은 약간의 모험이다. 특히 돌발상황에서의 대처가 잘못될 수 있다. 수십 년간 운전하여 익숙한 것과는 모든 것이 반대다.

남아공의 고속도로를 포함한 한적한 국도의 최고속도는 보통 120 km/hr이다. 특히 중앙분리대가 없는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무섭게 달려오는 자동차들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남아공 렌터카도 수동이 훨씬 싸다. 렌터카 비용을 절약하려다 보니 도요타 코롤라 수동을 선택해 버렸다. 원래 수동기어 차량 운전은 익숙하다. 그런데 운전석과 조수석이 뒤바뀐 차량이니 기어 변속을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해야 한다. 금세 익숙하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좀 됐다. 공항 렌터카 주차장에서 몇 번 연습하고 용감하게 큰길로 나섰다. 구글맵의 내비게이션 이용하여 아프리카 첫 번째 에어비앤비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뒤바뀐 차를 차량통행의 방향이 반대인 상황에서 운전한다는 것은 아주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아주 어색한 상황이다. 무사히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다. 한 번이라도 경험이 있다면 그렇게 부담되진 않을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캠핑카를 운전해 본 경험은 있다. 그런데 뉴질랜드 캠핑카는 기어가 자동이었다.

교차로에서 회전할 때 특히 신경 써야 된다. 좌회전은 왼쪽으로 차를 붙여 돌면 되는데 특히 우회전할 때 조심해야 한다. 내가 들어서야 하는 차선은 멀리 돌아 들어가야 한다. 우회전하는 앞차가 있으면 따라 회전하면 되지만 없을 때는 회전하기 전에 돌아 들어갈 차선을 먼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많은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라는 신호가 없다. 소위 비보호 우회전이 많다. 8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비보호인지 아닌지 구별이 잘 안된다.

기어 변속을 왼손으로 조작하는 것은 만 하루가 지나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소위 깜빡이 레버 스위치가 오른쪽에 달려 있다. 기어 변속하면서도 할 수 있게 하느라 그런 것 같다. 왼쪽 레버 스위치는 와이퍼다. 일주일이 지나도 급할 때는 깜빡이 대신 와이퍼를 작동시킨다.

소위 백미러라는 룸미러가 왼쪽 10시 방향에 있다. 오른쪽 두시 방향이 아니고... 룸미러를 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으니 잘 보게 안된다.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 몫이다.
그래서 선택의 순간 망설인다.
충분한 정보가 내게 있지 않다면...

렌터카를 외국에서 할 때 나는 주로 Hertz를 이용했다. 단골고객이라고 좀 특별히 대우해 준다. Hertz는 브랜드 가치가 있어 비싸다. 비싼 줄 알지만 다른 회사에 비해 크게 비싸지 않으면 선택한다.

이즈음 항공사 홈피에서 항공권 말고도 호텔이나 렌터카를 예약할 수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의 예약 확인 및 좌석배정을 하다가 우연히 홈피의 렌터카 예약 서비스를 들어가 봤다. 제휴한 여러 렌터카 회사를 전부 비교할 수 있다. Hertz도 여기서 검색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몇 번을 망설이다 Hertz를 포기하고 Bidvest 란 남아공 렌터카 회사를 선택했다. 19일 렌트에 50만 원이 안된다. 도요타 코롤라가... Hertz의 거의 반값이다. 어떤 숨겨진 가격이 있는지는 여행이 끝나 봐야 안다.

역시 도요타 라 연비는 좋지만 5만 키로 이상을 주행한 코롤라가 덜덜거린다. 시속 100 키로 이상의 고속에서 불안하다. 핸들의 유격도 크고 차가 뜨는 기분이다. 코롤라와 동급인 현대 아반떼 보다도 못하다. 독일 폭스바겐의 골프나 폴로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좀 후회된다.

시외를 달리다 보면 도로 옆에 히치하이킹하는 사람들이 많다. 손만 들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손에 지폐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태워주면 돈 내겠다는 표시다. 거의 대부분 남루한 차림의 흑인인데 지나갈 때마다 안쓰럽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안쓰러움을 느끼지 않을까?


여행 후 추가사항


처음 차를 받을 때 스마트폰으로 자동차의 모든 면을 찍어두는 것이 좋다. 나중에 리턴할 때를 대비하여...


19일 동안 2500 km를 무사히 운전하고 다녔다. 통행방향이 반대이다 보니 사실 많이 긴장하고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좌회전하면서 한국식으로 멀리 돌아 하마터면 반대 차선으로 진입할 뻔했다. 반쯤 돌았다가 아차 싶어 직진해 버렸다. 우리나라의 우회전에 해당하는 좌회전은 왼쪽에 있는 신호가 파란불일 때만 회전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우회전을 너무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카메라로 속도위반을 찍는다는 사인이 많다. 그리고 눈에 잘 안 띄는 카메라가 가끔 있다.


긴장되고 처음 적응에 시간이 걸렸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제는 영국이나 일본에서도 렌터카로 운전할  수 있다.


흑인들의 인건비가 저렴하여 거의 모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해준다. 대부분의 주유소에 미니마트가 있고, 휘발유는 리터당 1200원 정도이다.


소형차 위주지만 자주 벤츠나 BMW를 볼 수 있다. 비교적 차들이 깨끗하다. 남아공의 경제가 이즈음 괜찮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차장에 보면 무료주차장이라도 형광색 조끼를 입은 주차 감시원이 거의 항상 있다. 내가 주차한 차를 잘 보고 있었으니 갈 때 donation 하란다. 5 랜드 동전을 주면 되고 10 랜드짜리 지폐를 주면 거의 할렐루야 한다. 워낙 살기 어려운 흑인들을 위한 공공일자리란 느낌이 든다.


Bidvest 란 회사에서 19일 무제한 마일로 보험 포함하여 도요타 코롤라 수동을 우리 돈 54만 원 정도에 빌렸는데 이보다 더 저렴할 수가 없다. 저렴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우선 코롤라가 무척 낡았다. 계기판에는 5만 킬로로 나와 있지만 내가 느끼는 상태는 15만 이상이었다.


여행을 끝나고 귀국한 지 거의 세 달이 되어 Bidvest에서 이멜이 왔다. 속도위반 딱지 처리비용으로 우리 돈 27,000원 정도를 내 카드에 청구한다고...


휘발유가 1200원이 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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