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이 정말 어렵다.
나와 자주 함께 여행 나서는 대학동기가 있다. 2년 전에 35박의 남미 배낭여행 팩키지를 함께 했고 그 전에도 케냐에 있는 대학동기 만나러 함께 가기도 했다. 골프여행도 여러번 함께 했고 캄차카, 모로코, 바이칼을 2주 이상 배낭메고 함께 했다. 이번 여행도 내가 제안 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갈려냐고...
이번에는 배낭을 메는게 아니라 골프채 들고 렌터카 하고 다니자고 제안 했다. 좋다고 해서 함께 비행기표를 샀다. 보통 중요한 여행준비 예를 들면 렌터카 예약이나 초기 숙소 예약은 전부 내가 한다. 여행 출발 일주일 전 쯤 만났을 때 내가 물었다. “수동기어 차량 운전할 수 있지?” 할 수 있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국제운전면허증 없이 따라 나섰다. 집에 두고 온 것이 아니라 아예 안만들었단다. 국제운전면허증은 유효기간이 일년이다. “그거 매년 만들어야 하잖아...” 도대체 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걸까? 내가 한소리 했다.
“넌 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
성격이 좋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 친구왈 성격이 좋은 것과 생각이 없는 것은 같단다. 생각이 많으면 걱정이 많고 걱정이 많으면 성격이 좋을 수 없단다.
내가 어이가 없어 물었다. 수동기어 차량 운전할 수 있다며? 자기는 수동기어차량을 운전할 수 있다고만 했지 남아공에서 운전할 수 있다고는 한 적 없단다. “그러면 내가 왜 물었다고 생각했니?” “그건 모르지 그냥 묻길래 사실만 얘기한거지.”
잠시 멍했다. 이렇게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은 누구의 문제일까? 그렇게 오래 같이 여행을 했고 거의 40년을 가까이 한 대학동기인데... 결국 남아공에서 19일 동안 2500 km, 두바이에서 5일 동안 700 km 운전을 나 혼자 했다.
나는 외국을 오래 여행할 때 제일 힘든 것이 음식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나보다는 현지음식을 잘먹는다. 소금과 후추만 친 스테이크로 난 한끼를 간신히 떼우는데 이 친구는 떼우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만족스럽게 먹는다. 그렇지만 이번 남아공 27일을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음식을 하나도 안들고 왔다. “모로코 갈 때는 쌀떡국 네개는 들고 왔는데 왜 이번에는 맨손으로 온거야?” “찾아보니 케이프타운에 Korea Mart 가 있더라구. 그래서 그냥 왔지.” 난 이민가방에 잔뜩 싸갖고 갔다. 온갖 즉석식품을...
처음 몇일을 내가 들고 온 즉석식품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자기도 미안했는지 한국식품값을 자기한테 청구하란다. 입만 들고 와서 미안하다고...
케이프타운 Korea Mart 에 갔었다. 그러나 한국의 식품점이나 미국의 Korea Mart 에 비해 형편 없었다. 라면 몇개와 김치 두팩만 사들고 나왔다.
다음에 묵을 숙소 좀 찾아보라하면 열심히 찾는듯 하다가도 결정의 순간이 오면 나더러 하란다. 니가 경험이 많으니까 잘 선택한다고....
어디서 묵을까?
내일은 어디로 갈까?
어느 골프장을 갈까?
무엇으로 오늘 저녁을 떼울까?
거의 모든 결정을 내가 한다.
결정에는 항상 스트레스가 따른다.
렌터카 운전은 나만 하고(면허증이 없으니) 골프장부킹도 내가 하고 심지어 골프장 카트운전도 내가 주로 한다. 처음에는 카트운전을 친구에게 맡겼다. 난 오른쪽 핸들 차량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근데 영 아니다. 결국 답답한 놈이 하는거다.
하루는 자기를 배려해 달란다.
내가 자기를 배려 안한단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사건은 이렇다. Paarl golf club 에 11시 티타임예약을 인터넷으로 했다. Stellenbosch 에서 7시 아침을 먹고 골프장에 도착하니 9시 조금 넘었다. 옷 갈아 입고 골프카트에 골프채 매달고 했지만 시간이 한시간은 더 남았다.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것 같은데, 내가 Golf starter 에게 우린 준비 다 됐는데 미리 시작해도 좋으냐고 물었다. 골프장이 한산해서 시작해도 좋다고 했다. 친구가 보이길래 빨리 카트 태워 첫 티로 갔다. 골프를 다 치고나서 맥주 한잔 하는데 친구가 불만을 얘기했다. 자기는 11시에 시작할 줄 알고 몸도 안풀고 여유부리다 나 때문에 헐레벌떡 시작하느라 몸 못풀어서 오늘 골프 망했단다. 왜 자기한테 미리 시작해도 좋은지 안물어 보냔다.
내가 자기를 배려 안해준단다.
트윈 침대가 있는 호텔방에서다. 저녁을 잘 먹고 와서 각자 따로 스마트폰 보면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친구가 방구를 꾼다. 저녁에 먹은 비빔밥에 문제가 있었는지 옆 침대에 내가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채 방구 세번을 우렁차게 연달아 꾼다. 두번까지는 나도 참았는데 세번째는 내가 한 소리 했다. “나도 좀 배려해 주라. 옆에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방구를 꿀 수가 있냐?” 친구는 좀 놀란듯 “생리현상을 어떻하라구?” “아무리 생리현상이라도 소리 안나게 비벼 꾸든지 나가 꾸든지 해야지 그렇게 막 꿀수가 있냐? 배려할 줄 알아야지. 자기는 배려해 달라며...”
Pinnacle Point Golf Club 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한번 더 치기로 했다. 일정상 100 km 떨어진 Knysna 에서 아침 일찍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Knysna 의 마지막 밤에 지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출발하는 아침에는 제법 빗줄기가 굵어졌다. 뿌연 하늘과 짙은 안개속을 뚫고 거의 100km 를 달렸다. 정확히 한시간 15분 동안 친구는 옆에 앉아 연신 하품을 해대며 계속 궁시렁거린다. 이 날씨에 칠 수 있을까? 안개 때문에 홀이 보이겠나? 비 많이 와서 골프카트가 페어웨이에 진입할 수 있겠나? 내가 전혀 대꾸도 안하면서 빗길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내 기분이 별로인 것을 느낄만도 할텐데 전혀 개의치 않고 그 긴시간을 궁시렁거린다. 골프장 도착하여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면서 한소리 했다.
“봐! 여기 날씨 좋잖아! 쓸데없는 걱정하는 것 들어주느라 짜증나서 혼났네!”
케이프타운에서 꼭 해야 하는 것은 Table Mountain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다. Pinnacle Point Lodge 에서 자고 아침에 출발하여 400 km 를 운전하여 케이프타운으로 돌아 왔다. 오후 4시경에 케이프타운에 도착했으나 에어비앤비 첵인까지는 시간이 남아 케이블카 타는 곳에 가보자고 했다. 붐비고 복잡한 곳이니 미리 한번 가보고 내일 타러 오자고... 산중턱에 있는 케이블카 타는 곳을 어렵게 찾아 왔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엄청 붐비리라 생각했는데 사람이 없다. 바람이 좀 있지만 날은 쨍쨍하다. 케이블카 정거장 앞에는 주차장이 안보여 친구를 내려주면서 좀 알아보라고 했다. 난 저 앞쪽으로 가서 주차든 정차든 하고 있을테니... 사람이 없으니 주차장소를 금새 찾았다. 차에서 내려보니 친구가 금새온다. 여기다 주차하면 된단다. 이미 주차는 했고...
“왜 이리 사람이 없대? 지금 탈 수는 있는거야?” 자기는 주차장만 물어 봤단다. 사실은 바람이 많이 불어 케이블카 운행이 오늘은 취소된 것이었다. 내가 또 한소리 했다.
“넌 생각이 있는거니? 여기를 미리 왜 온 것인데...”
난 케이블카 운행시간, 주차장소, 어느 시간대에 와야 덜 기다리는지 등등을 물어오길 원했는데 이 친구는 주차 못하고 내려주니 주차장만 물어본 것이었다.
의사소통이 정말 어렵다.
나이들어 그런 것인가?
나도 짜증이 느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