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 결정이 잘 안된다. 결정장애란 말도 있다. 나이 들어 너무 많이 알아서 이것저것 재보다가 결국 결정 못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어쩌면 나이 들어서가 아니고 정보의 바다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다리품을 팔든지 전문가를 찾아서 물어봤을텐데 지금은 인터넷에 너무 많은 경험과 거의 모든 전문가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너무 많다는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Life is BCD. 란 말이 있다. 인생은 birth 탄생과 death 죽음 사이의 무수한 선택 choice 이란 것이다. 60년을 살면서 정말 많은 선택을 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려니 한다.
토요일 아침 대학동기들과의 가벼운 산행을 위해 지하철을 탔다. 어제 그제 이틀동안이나 결정하지 못하고 헤매던 일이 다시 생각났다. 두세시간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을 이틀이나 붙잡고 있었고 그 결과 또한 그렇게 깔끔하지 못했다는 것에 은근히 부아가 났다. 그러던 중에 지하철 선반 위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1000번의 고민, 1001번째 선택, OO 성형외과’
괜히 웃음이 나온다. 내가 늙어서 나만 결정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똑똑한 젊은 이들도 1000번을 고민한다지 않는가?
결국 너무 많아서 그렇다. 메뉴판의 메뉴도 너무 많고, 가격도 다르고 품질도 다르지만 같은 메뉴를 제공하는 성형외과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니 큰돈 들고 잘못되면 원상회복도 쉽지 않으니 1000번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누가 결정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성형에 비하면 내가 어제그제 이틀이나 하던 고민은 고민도 아니다. 오래 전에 화장실 앞 발걸레가 눈에 들어 왔다. 누군지 모르는 어느 집 아이의 돐잔치 기념 수건이었다. 요새는 이런 것도 만드네 하며 나는 환갑기념 타월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었다. 오래 전에 결심했건만 어느새 나의 환갑이 다음 달로 다가온 것이다.
내가 환갑까지 살 수 있으리라 나는 생각 안했다.
그런데 환갑을 맞았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나 나름대로 기념하고 감사하고 싶었다. 그 중에 하나가 환갑기념 타월 100장이다. 내 환갑 기념 타월 100장을 주문하기 위해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의 시간을 고민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런 기념품 타월 해주는 곳이 족히 100군데는 될 것 같다. 타월의 크기와 색깔, 타월의 두께를 뜻하는 GSM 이란 용어, 비슷비슷한 가격과 기념하는 내용을 나염인쇄 할 것이냐 자수를 놓을 것이냐 그리고 뭐라고 새겨 넣을 것이냐 등등...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 끝도 없이 많다.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시간낭비라 판단하고 나름대로 결정하고 주문했다.
불금에 승진기념 직장동료의 축하회식을 하고 11시가 넘어 집에 오니 시집간 딸이 거실에 있다. 남편이 출장가서 혼자 자기 싫어서 왔단다. 나름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줄 알고, 환갑기념 타월에 수놓을 문구를 자랑스럽게 딸에게 보여줬다.
“지민아 이거 봐라!”
“이게 모야?”
“청색의 제법 두꺼운 고급 타월에 이렇게 수놓아 100장 주문했다. 잘했지?”
“아니 청색 타월에 금색과 핑크로 수놓다니... 촌스럽게. 차라리 핑크는 빼고 전부 같은 금색으로 해. 색깔이 너무 많잖아...”
“이미 confirm 했는데...”
“아유... 나한테 의논하고 하지 왜 혼자 결정했어!”
"너 바쁜 것 같아서..."
침실에 있던 아내가 나와 딸과의 대화를 듣고 깼는지, 거실로 나오면서 자다 깬 목소리로 결정적인 한마디 한다.
“수건은 무슨 수건이래!
후진 수건은 바로 걸레 되는거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