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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09. 2019

미얀마 6

난 복이 많다.


늦은 점심을 때우자(나는 여행 중에는 음식이 제일 문제다.) 비가 그쳤다. 미얀마의 최대 관광지 바간에서 이렇게 개기기만 할 수 없을 것 같아 전동스쿠터(여기선 e-bike 라 한다.) 타기로 마음먹었다. 전동스쿠터는 난생처음이다. 헬멧을 쓰고 오른손 핸들을 돌리니 부드럽게 나간다. 아주 쉽다. 한번 충전으로 25킬로 간다는데 중간에 배터리 다 방전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잠시 스친다. 내가 묵고 있는 어메이징 바간 리조트는 좀 외곽에 있다. 근처에 골프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일단 골프장으로 갔다. 스타트 하우스 근처에 캐디들이 여러 명 보인다. 영어 좀 하는 아가씨가 영어로 된 가격표를 보여준다. 전동카트 말고 수동카트로 한 라운드 도는데 정확히 62불이다(그린피 35, 골프채 렌트 15, 캐디피 10, 카트 2). 공은 한 줄 세 개를 우리 돈 8000원 주고 사면되고 티는 캐디가 있단다. 혼자서 플레이할 수 있고 아침 6:30부터 가능하단다. 내일 아침 먹고 오겠다고 했다. 아무 준비 없이 왔지만 운동화 신고 장갑 없이 맨손으로 치면 된다. 파고다 사이로 공을 날릴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본격적으로 바간으로 스쿠터를 몰았다. 비가 많이 온 뒤라 먼지도 없이 쾌적하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의 배기가스가 문제다. 대로를 신나게 달리다 사잇길로 들어섰다. 어디로 가야 하나 하며 망설이며 스쿠터를 천천히 세우는데, “할아부지 어디 가요?”하고 오토바이 탄 젊은 미얀마 처녀가 우리말로 묻는다. 너무 착하게 생겨 웃으면서 미소 지었더니 다시 어디 가냐고 묻는다. 사실 어딜 정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다. 어떻게 한국말하냐고 물으니 한국 여자 친구가 있단다. 특히 여자를 강조한다. 자기 한국 이름이 조미조 란다. 그러면서 내 이름은 뭐냐고 묻는다. 자기가 안내해 줄 수 있단다. 원래 못 올라 가는데 올라갈 수 있는 파고다(탑과 동의어)를 안단다. 파고다에 올라 가면 전망이 아주 아름답단다. 몇 살인지 물으니 25살이란다. 세 군데를 안단다. 목적지가 없으니 따라갈 밖에. 그녀의 오토바이를 따라가며 난 생각했다. 난 여자복이 있다고.

첫 번째 파고다 앞에 스쿠터를 세우고 안으로 안내한다. 안으로 들어갈 때는 맨발이어야 한다. 덧신이나 양말도 안된다. 파고다 안에는 보통 좌불이 있다. 옆으로 난 계단을 이용하여 둥글고 뾰족한 탑의 기단부까지 오를 수 있다. 올라 보니 전망이 좋다. 사진에서 보던 경치다. 사진작가 같은 시람이 석양 쪽으로 삼각대를 세우고 찬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작가가 자리 잡고 있을 정도니 명당임에 틀림없다. 사진 몇 장 찍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난 참 운이 좋다.

두 번째 파고다로 향했다. 파고다에 도착하니 중국인 젊은 남녀가 이미 위에 올라 열심히 사진 찍고 있다. 주변에 미얀마 청년이 있다. 저 친구가 안내한 것이 틀림없다. 미조가 미얀마 청년과 대화를 하는 것으로 보아 아는 사이다. 나도 탑에 올라 사진 몇 장 찍었지만 아까 찍은 것이나 비슷하다. 미조가 세 번째 파고다도 가겠냐고 묻는다. 아니 됐다고 했다. 그러자 파고다 정 중앙의 부처님 앞으로 나를 안내한다. 그녀는 어디서 꺼냈는지 둘둘 말은 천 위에 그린 그림을 여러 장 꺼낸다. 옛날 인도에서 많이 보던 그림이다. 모래로 그린 그림이라며 하나만 사달랜다.

아뿔싸!

그림 한 점에 50불인데 지금 비시즌이라 30불에 주겠단다. 난 그림 필요 없다며 10불을 건넸다. 안 받는다. 부처님 앞에서 그러면 안된단다. 교환을 해야 한단다. 그냥 받으면 부처님이 화낸단다. 막무가내다. 어이가 없어 돌아 나오니 따라 나온다. 10불을 손에 쥐어주고 얼른 이 자리를 뜨려는데 그러면 그림을 15불에 사란다. 고개를 저으니 엄청 슬픈 표정을 짓는다. 곧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이다. 내 마음이 아린다. 오늘 비가 와서 공쳤단다. 자기에게 행운을 달란다. 행운을. 자기가 두 군데나 안내했는데 하며 두 군데를 강조한다. 곧 울 것 같다. 그 눈을 보고 그냥 매정하게 갈 수가 없다. 나도 그렇게 모진 사람은 못된다. 10불짜리 한 장을 기어코 더 받아 내더니 뒤도 안 보고 돌아 선다. 언제 그런 슬픈 표정 지었나 싶다. 다섯 시간 골프장에서 무거운 골프백 끌고 온갖 시중들어도 공임이 10불인데, 미조는 한 40분 오토바이로 나를 안내하고 20불 벌었다. 난 씁쓸했다. 원래 10불 정도는 주겠단 생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외국여행 중에 모르는 사람이 이름을 물으면 100% 사기꾼이다. 지난 수십 년의 경험으로 터득한 것인데 오늘 깜빡했다. 내게 여자 사기꾼 경험이 없어서 그랬다. 난 복이 많은 줄 알았다. 이름을 교환하면 그다음은 악수다. 오늘 미조와 악수했다. 악수하고도 깨닫지 못했다. 미조의 수법이 전형적이란 것을 두 번째 파고다에서 미얀마 청년을 보고 느꼈다. 그땐 이미 늦었다.

이제 바간 관광은 끝이다.


참고: 미얀마 바간에서 유명한 것이 열기구 투어다. 넓은 평지에 수많은 파고다 사이로 여러 대가 떠오르며 일출을 보는 것이다.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 보면 일인당 350불이다. 너무 비싸다. 그리고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난 해봤다.(90 유로 현찰) 처음은 신기하지만 해뜨기 두 시간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그래서 바간에서는 아예 할 생각 안 했다.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니 프로모션 해서 320불이란다. 어제 오후에 바간에 도착했는데 오늘 아침은 비가 엄청 왔으니 당연히 뜨지 못했을 것이고 내일 새벽에도 비 예보가 있다. 비가 안 와도 구름이 있으면 일출을 제대로 못 본다. 모레 아침 난 일찍 인레 호수로 가야 하니 열기구 투어는 내가 원했어도 못할 뻔했다. 아무래도 못할 것을 아예 포기했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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