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an 08. 2019

노후대비 6

나는 탐색 중.


치과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있을까? 어릴 때 엄마 손 잡고 치과 가면 끔찍했다. 지금은 장비가 좋아져서 없지만 그 당시에는 여러 개의 벨트로 연결되어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이 깎는 기계가 있었다. 그 돌아가는 광경을 입 벌리고 눈 앞에서 보면서 입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울지 않을 아이가 있을까? 옛날보다는 좋아졌지만 지금도 스케일링받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 있을까?

내 베프가 치과의사다. 나도 어릴 땐 치과 가는 것이 끔찍했지만 치과의사가 친구다 보니 친구가 병원을 개업하고 나서는 오다가다 친구 병원에 들른다. 치아 때문에 가는 경우보다 끝날 시간 맞춰가는 경우가 많다.(한 잔 하러.) 워낙 많이 치과에서 입을 벌리다 보니 나는 남들처럼 그렇게 두렵지 않다. 아프지 않아도 일 년에 최소한 두 번은 입을 벌린다. 치과에 대한 두려움이 이제는 없어졌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 딸과 아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 친구 병원을 자주 갔다. 심심하면 갈 정도로. 입만 벌리고 있다 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얘네들은 치과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아과 병원보다 무섭지 않다.(소아과에서는 가끔 주사를 놓는다.)

죽음도 그렇지 않을까?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보통은 죽음을 무시하고 산다. 어쩌다 장례식장을 가도 거기서의 죽음과 내 죽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근거 없는 낙천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노후를 대비하려면 우선 진짜 종말, 육체적 죽음에 대해 나름 정리를 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책(죽음에 관한 책이 이렇게 많은 줄 요새 알았다.)을 읽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며 그 언제가 내일이나 한 달 뒤나 일 년 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친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고 싶은지...


막연히 “나는 요양원 안 갈 거야!”가 아니고 요양원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 사연들을 이해해야 한다. 아직 요양원 있는 내 친구들은 없지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있는 내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많다. 내 아버님도 집에는 계시지만 요양원 계신 것이나 거의 마찬가지다. 새어머니가 집에서 모시기 힘들다 포기하시면 방법이 없다. 나는 안 가겠다면서 부모님은 보낸다. 결국 내가 그 상황이 되면 내 아들 딸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들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를 지게에 메고 고려장 하러 산에 올랐다가 지게까지 버리고 맨 손으로 돌아오려는데 아들이 지게를 챙기더란 얘기는 너무 유명해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죽음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은 노후에 어떻게 살 것이냐란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다. 오늘 신문에 이어령 교수의 인터뷰가 실렸다. 암 진단을 받으셨단다. 그 기사 중에 내 맘에 꽂히는 구절이 있다. “과거를 알고 싶으면 검색하고, 현재를 알고 싶으면 사색하고, 미래가 궁금하면 탐색하라.”


나는 열심히 탐색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얀마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