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간에서 인레호수 가는 길에서
미얀마 바간에서 결국 혼자 골프를 쳤다. 느긋하게 아침 일과를 소화하고 골프장에 걸어가니 아침 9시다. 아웃코스 9번 홀 그린에 남자 세 명이 퍼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오후 한 시 반 내가 플레이를 끝낼 때까지 다른 골퍼를 보지 못했다. 페어웨이가 1/3은 초록이고 나머지는 누렇다. 바짝 말라 다 죽어 가는 잔디를 턱없이 부족한 스프링클러로 물 준 곳만 초록색이다. 그에 비하면 그린은 양반이다. 전장이 7000 야드가 넘고 파 4 홀의 길이가 400 야드 전후다. 150 야드 파3 두 홀에서만 간신히 파를 기록했다. 17홀에서 힘들어 거의 주저앉는 캐디 타타와 함께 2019년 첫 골프를 쳤다. 골프장 곳곳에 다 무너져 가는 파고다가 산재해 있다. 쌩크라도 나면 파고다를 맞힐 수 있겠다. 파고다 안에는 부처님이 계신다.
역시 아침 식당에서 바나나 두 개를 챙긴 것은 잘한 일이었다. 전반을 끝내고 뿌듯했다. 바나나가 있다는 것이.
바간에서 골프를 친 다음 날 아침 8시에 나를 낭쉐까지 태우고 갈 버스가 온다 했다.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짐도 정리하고 여섯 시 아침을 먹고 리조트 옥상 테라스로 올라갔다. 열기구 뜨는 것을 보기 위해.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전부 22 개의 열기구가 뜨는 것을 보았다. 열기구는 대기가 역전층인 상황일 때 떠야 한다. 그리고 역전층이 없어지기 전에 착륙해야 한다. (역전층은 지표면의 온도가 낮고 상승할수록 온도가 높아지는 대기층이다. 무거운 공기가 밑에 있어 상하의 대류현상이 없다. 공기가 그대로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해가 지면 대지가 먼저 식어 역전층이 생기기 시작하고 밤새 점점 두꺼워진다. 일출과 함께 대지가 빛을 받기 시작하면 역전층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지구과학에서 배웠다.) 그래서 열기구는 새벽에 띠운다.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Balloons over Bagan 회사의 풍선 10개와 Golden eagles ballooning 회사의 풍선 다섯 개가 섞여서 떠오르고, 마지막으로 Oriental ballooning (최근에 생긴 회사 같은데 미얀마의 다른 장소에서도 영업하고 있다)의 풍선 7개가 순차적으로 떠오른다. 풍선의 크기가 정말 크다. 그런 풍선 수십 개가 눈 앞에 있으니 장관이다.(참고로 터키 카파도키아에서는 한 번에 거의 100 개가 떠오른다.) 바간에서의 3일 아침 중에 떠나는 날 이 경치를 봤다는 것이 행운이다.(하루는 비 오고 하루는 안개가 끼어 풍선이 뜨지 못했다 ) 나는 역시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픽업한 미니버스는 아주 낡은 중국산 같다. 15인승인데 여러 호텔을 돌며 14명의 승객을 꽉 채우자 달리기 시작한다. 난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인데 이렇게 달려도 되나 싶게 달린다. 도로의 포장도 엉성하고 중앙선도 없는 곳이 많다. 오토바이도 많다.(결국 오후에 오토바이가 길 건너던 사람을 친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이러다 앞바퀴 펑크 나거나 빠지면 길 밖으로 처밖을 텐데. 안전벨트도 없다. 여행자보험을 들긴 들었는데(난 최소 보장으로 항상 든다) 보험금이 좀 더 비싼 것을 들 껄하는 후회 아닌 생각이 든다. 거의 쿠션이 주저앉은 시트는 비행기 좌석보다 딱딱하다. 한 시간 지나자 엉덩이가 배겨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엉덩이 근육이 빠졌는지 비행기나 버스에 두 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아프다.(그래서 10시간 비행기 탈 때는 욕창 방지 쿠션을 갖고 탄다) 배도 고프기 시작한다. 여섯 시 이른 조식을 했으니.
미얀마는 우리나라와 같이 자동차가 우측통행을 한다. 영국의 식민지였다는데 언제부터 우측통행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많은 자동차들이 오른쪽에 핸들이 있다. 일본에서 중고자동차를 수입한 것이리라. 심지어 큰 트럭들도 오른쪽 핸들이 많다. 자동차의 80% 이상이 일본에서 수입된 것 같다. 고속도로뿐 아니라 마을과 마을 사이에서도 톨게이트가 있고 국도 이용료를 수시로 받는다. 그런데 톨게이트가 오른쪽에 있다. 대부분의 차가 오른쪽 핸들이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들여온 새 차나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중고 스타렉스처럼 왼쪽 핸들 차량의 운전기사는 불편하다. 앞자리에 앉은 스위스 청년이 창문 열고 계속 돈을 건넨다. 그리고 오른쪽 핸들이라 시야가 좋지 않을 텐데도 왕복 2차선 국도에서 빈번히 추월을 한다.
내 옆에는 이스라엘에서 온 젊은 남녀가 앉았는데 원앙을 생각나게 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벼운 키스를 하더니 가는 동안 내내 기대고 얼싸 앉고 쓰다듬고 눈 뜨고 못 보겠다. 결국 점심 먹고 둘 다 혼절하기 전까지 그랬다. 7시간 반쯤 지나 Kalaw에 도착했다. 14명의 승객 중에 11명이 내린다. 미니버스 지붕 위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낭이 내려지고 뿔뿔이 흩어진다. Kalaw에서 시작하여 1박 2일로 오늘의 내 목적지인 인레호수까지 트레킹을 한단다. 같이 점심 먹은 스위스 아가씨가 그랬다. 호주에서 온 아저씨와 멕시코에서 온 아줌마와 셋이 한 시간 반을 더 달려 인레 호수변 마을인 낭쉐에 도착했다. 오백 미터 떨어진 호텔까지 걸어오니 오늘 이동에 꼬박 9시간 반이 걸렸다. 이 지역도 외국인에게 15,000 짯의 입장료를 마을 입구에서 걷는다.
미얀마 동쪽은 고지대이다. 양곤, 바간, 만달레이 보다 훨씬 높아서 기온이 차다. 밤에는 10도 이하로도 떨어진다. 초경량 다운재킷 없었으면 곤란했을 뻔했다. 털모자 쓰고 있는 현지인들도 보인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란 그릇에 무엇인가를 계속 주워 담는 것이다. 주워 담은 것의 가치가 결국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지만 그릇 자체의 가치도 생각해 봐야 한다. 더 이상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존재 가치는 그릇의 가치만 남는다. 그릇의 가치가 없다면 더 이상의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고, 그릇의 가치가 있다면 그래도 호흡기를 달거나 위루관으로 영양을 공급하며 생존해야 하는 것이다.
난 그릇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이상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본인의 의지로 금식을 할 수 있겠지만 굶어 죽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을 가족의 마음은 어떨까 싶다.
사족: 그래서 네덜란드처럼 의사에 의한 적극적인 안락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되면 좋겠다. 내가 은퇴하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