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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20. 2019

미얀마 9

석양은 어디서 봐도 근사하다.



낭쉐(인레호수)에서 헤호 공항까지는 차로 50분 걸린다. 호텔의 미니버스를 혼자 타고 무려 22,000 짯을 주고 갔다. 낭쉐에서 양곤까지 12시간 걸리는 버스비용과 같다. 비행기 출발은 오후 4:55 이다. 아침 비행기도 두 편이나 있었는데 오전을 즐기고 싶어 오후 편을 택했다. (오전의 한가한 여유가 좋다) 표를 사고 보니 아침 비행기들의 이동 시간은 한 시간 정도인데 반해 내가 산 오후 편은 두 시간이 넘는다. 내가 뭘 잘못 샀나 하고 자세히 보니 내가 산 표는 헤호에서 양곤으로 직항이 아니다. 양곤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헤호, 바간을 거쳐 다시 양곤으로 돌아간다. 내 표는 바간을 경유해 간다.


헤호에서 바간을 (9시간 미니버스 타고 왔던 거리를 ) 비행시간 40분 만에 갔다. 미얀마의 산지를 넘자 계속 평지다. 드디어 이라와디 강가의 파고다가 널린 바간을 위에서 크게 선회하며 천천히 착륙한다. 몇몇 사람들은 내리고 몇몇 사람들이 탄다. 빈자리이던 옆자리에 구두를 신은 미얀마 여성이 앉는다.(내가 본 미얀마 사람들 대부분이 조리를 신는다. 물론 가끔 슬리퍼도 있다. 구두 신은 여자는 거의 없다) 관광객은 확실히 아니다. 그럼 뭘까? 구두 신고 비행기 타는 미얀마 여인의 정체가 궁금하다.  


비행기가 바로 뜬다. 바간에서 이륙할 때가 석양이었다. 서쪽 낮은 구릉으로 태양이 빨갛게 막 넘어가는 중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며 고도를 높이자 넘어가던 태양이 다시 약간 솟는다. 넘어가는 태양을 비행기가 억지로 넘어가지 못하게 붙잡는 형상이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이 생각난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그렇게 편히 가시면 안 된다고 소리치며 붙잡는 아들(Dylan Thomas)이 떠오른다.


열세 살 때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근 일 년 이상 어머니는 신부전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집 분위기로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죽음이 그때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직전 무더운 7월 20일 방과 후 중학교 정문을 나오는데, 당시 대학생이던 사촌 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형과 집으로 왔다. 우리 집 대문이 열리고 큰고모님이 마당에서 나를 안는다. 큰일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촌 형과 바로 근처 국민학교로 가 동생도 데려 왔다. 그 날 동생과 나는 사촌 형집에서 놀다가 잤다. 그리고 다음 날 형 친구까지 네 명이 워커힐 수영장을 갔다. 평일이라 한산한 수영장에서 종일 신나게 물놀이하며 보냈다. 다음날 발인에도 참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침 일찍 나와 동생은 바로 장례버스에 올랐다. 드디어 장지에서 관이 내려지고 나와 동생에게 삽이 주어졌다. 관 위에 흙을 덮어 엄마를 묻으라고. 그때까지도 난 울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도 울지 않았다. 엄마와 제일 친했던 외숙모만 서럽게 곡을 했다. 엄마와 제일 친했던 숙모이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았고 장례식 다음날 해수욕장 갔다가 마리를 만난다. 내가 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다.


태양이 넘어가고도 한 동안 오른쪽 창문 밖은 붉은 하늘이 장관을 이루었다. 난 참 운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저녁 해 지는 시간을 즈음하여 바간 공항을 내리고 뜨면서 이 장관을 보다니.


석양은 어디서 봐도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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