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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13. 2019

미얀마 8

균형 잡지 못하는 날이 온다.


낭쉐는 인레호수 관광의 중심 마을이다. 여기서 호텔 3박을 하니(이즈음은 한 곳에 3박이 기본 여행 스타일) 하루는 관광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호수 주변 트레킹이나 호수를 보트 트립이 하는 것이 주로 하는 관광인데, 트레킹은 흥미 없고 보트나 타야겠다. 보트 트립 파는 곳이 무지하게 많다. 호텔 로비에서도 파는데 보트 하나를 종일 빌리는데 우리 돈 2 만원도 안된다. 자전거로 낭쉐를 둘러보다가 ‘Share boat trip’ 이란 광고 현수막을 보았다. 일인당 우리 돈 4,500 원이고 호텔 픽업 서비스도 한다는. 현수막을 사진 찍어 호텔 프런트 아가씨에게 예약을 부탁했다. 아침 7:30에 픽업 온단다.

아침 7:40 경에 호텔로 작은 트럭이 왔다. 젊고 똘똘해 보이는 미얀마 청년이 운전한다. 트럭 뒤에는 잘하면 열명 정도 두 줄로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젊은 백인 청년이 이미 한 명 있다. 코스타리카에서 왔단다. 코스타리카는 파나마 위에 있는 중남미 나라인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혈통처럼 보인다. 코스타리카는 인구가 4백만 정도이고 자연이 좋단다.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언뜻 들었다. 여기저기 숙소를 돌더니 트럭에 외국인 관광객 열명을 다 채운다. 운전하던 젊은 미얀마 청년이 영어로 설명을 한다. 픽업은 하지만 드롭은 없으니 각자 알아서 호텔로 돌아가고. 인데이(장소명, 나는 안 가봐서 모른다)를 더 가고 싶으면 돈을 1000 짯 추가해 갈 수 있단다. 자기는 Mr. Linn 이고 작년 8월부터 페북과 인스타에 홈피를 개설하고 보트를 같이 타게 해주는 이 서비스를 시작했단다. 그러면서 페북에 올린다며 우리 모두를 사진 찍는다.(저녁에 보니 아침 사진이 이미 올라와 있다) 괜찮은 비즈니스 모델이란 생각이 들었다. 코스타리카에서 온 친구가 엄지를 치켜세운다. 이미 리뷰가 좋다는 얘기다. 난 길가다 작은 현수막을 보고 이 투어에 우연히 조인했지만 젊은 친구들은 역시 페북이나 인스타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받는다. 구글 뿐 아니라 페북이나 인스타에서 검색하는 습관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난 참 운이 좋다.

날렵하게 긴 보트에 작은 디젤엔진이(손으로 돌려서 시동을 건다) 있고 보통 관광객 5명을 태운다.(간혹 성인 여섯까지는 탄다.) 우리 그룹 열 명은 두 대의 보트에 나뉘어 승선했다. 낭쉐 다리 밑에서 탄 보트는 아침 안개를 가르며 정확하게 8시에 출발했다. 5 킬로 정도의 좁은 수로를 지나가자 드디어 넓은 인레 호수에 나왔다. 제법 길고 큰 호수다.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침 조업 중인 어부들이 많다. 우리가 탄 보트는 엔진이 달리고 성인 대여섯을 태울 수 있지만 어부들의 낚싯배는 작은 엔진이 달린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잘해야 한 두 명 타겠다. 통나무를 이쁘게 깎은 낚싯배들은 어부가 서서 작업을 한다. 서서 한 발로 노를 젓고 한 발로 서서 손으로 그물을 내리거나 어구를 던진다. 관광객이 가까이 가면 사진 찍으라고 자세를 취하는데 제법 우아한 동작과 포즈를 취한다.

흔들리는 작은 조각배 위에 서서 균형을 잡는 것을 보니 어부의 사회적 죽음이 생각난다. 저 균형을 잡지 못하는 육체가 되면 인레호수 어부의 존재가 끝난다. 아무리 매일 배를 타고 낚시를 한다 해도 저 균형이 깨지는 날은 온다.

내 아버지의 균형이 깨진 날이 생각난다. 새벽에 잠이 깬 아버지는 일없이 체중계 위에 올랐다가 잘 안 보이는 숫자판을 보기 위해 엉거주춤 구부리다 뒤로 넘어지셨다. 새벽에 놀라 달려간 동생이 응급실로 모시고 갔던 그 날이 아버지의 균형이 깨진 날이다. 그 후 얼마 안가 한 번 더 균형이 깨져 머리를 문에 부딪힌 이후에는 혼자 걷는 것을 포기하셨다. 집 안에서도 보행보조기를 끌고 다니는 상황이 되었다. 혼자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 날은 결국 온다.

나 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친구가 있다. 아버지는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시고 장인은 넘어져서 양쪽 고관절이 다 부서져 병원에 계신다.(결국 얼마 못가 돌아가셨다) 실버타운에 혼자 계시던 어머니가 침대에서 떨어져 응급실로 모시고 갔단다. 응급실 방문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란다. 응급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어머님 왈 “자식이 원수라더니 이젠 부모가 원수인 것 같다.” 친구는 유머 같아 헛웃음이 나오더란다.

결국 균형을 못 잡는 날이 온다. 물론 그런 날을 상상하긴 싫다. 그렇다고 외면하고 살지는 말자. 그리고 그런 날이 와도 불평하지 말자. 결국 올 것이 오는 것이니.

거의 한 시간을 달려 인레호수의 남쪽 수상 마을에 도착했다. 첫 번째 기착지는 은세공 작업실과 샵이다. 대부분 구경만 하고 사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두 번째는 불교 사원이다. 인레호수의 모든 관광 보트가 기착하는 곳이라 선착장이 붐빈다. 사원 바로 옆에는 제법 큰 시장까지 있다. 근처 수상 마을의 시장인 것 같다. 세 번째는 담배, 시가 및 작은 나무 용기를 만드는 작업실과 샵이고, 네 번째는 천을 짜는 작업실과 샵이다. 연꽃 줄기에서 실을 뽑는 장면은 난생처음이다. 긴 연꽃 줄기를 칼로 겉만 자르고 뽑자 아주 가는 실이 길게 계속 나온다. 너무 가늘어 실들을 모아 꼰다. 네 번째는 수상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돼지고기 들어간 무난한 볶음밥을 시켰다. 점심식사 후 인데이를 갈 사람과 안 갈 사람을 나누어 태운다. 다행히 4:6 으로 갈라졌다. 네덜란드에서 온 71세의 동갑 부부(둘이 51년을 같이 살았단다), 일본에서 온 아저씨와 내가 안 가는 그룹이 되었다. 젊은 그룹과 나이 든 그룹으로 나뉜다. 수도원 하나 더 보고 다시 낭쉐에 도착하니 오후 세시다. 관광은 역시 힘들다. 호수 관광의 많은 부분이 일종의 쇼핑관광이었다. 나는 바나나 냄새나는 담배 한 갑 샀다. 그것이 우리 그룹에서 한 유일한 쇼핑이다.


후기: 표지 사진의 어부는 복장이 너무 깨끗해서 좀 이상했다. 다른 어부들의 평상복과는 다르다. 미얀마 전통의상 같고 우리 보트가 다가 가면(보트의 속도도 늦춘다) 아주 우아하게 준비된 자세를 취한다. 미얀마 사람에게 물어보니 역시 관광객을 위한 모델이란다.... 어쩐지 좀 수상했다. 어울리지 않는 어구와 하얀 옷이!! 그런 모델이 여기저기 몇 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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