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이었던 그는 청색과 회색 양복만 갖고 있단다. 아침마다 무슨 색 양복을 입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결정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대통령으로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 어마 무시하게 많은데 무슨 색 양복을 입을 것인가를 결정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결정하기 위해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대통령도 아닌 나는 지난 몇 달간 계속 생각만 하던 것을 드디어 정했다. 사실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었지만 나는 그 과정을 충분히 즐겼다. 다가오는 여름방학에 어디를 갈 것인가를 정했다. 3월 개학하고부터 아니 겨울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고민하던 것을. 여름이 여행하기 적기인 곳, 한국보다는 덜 더운 곳, 여행객들로 붐비지 않는 곳,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은 곳... 사실 쉬운 일 아니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후보지 3곳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붙어 있는 발트 3국, 코카서스 산맥 아래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인도네시아 발리섬을 놓고 고민하였다.
시간 날 때마다 모니터 큰 화면에 구글맵을 띄우고 나라를 찾고 도시를 찾으며 구글 여행을 한다. 도시에 대한 정보를 찾고 사람들이 올린 사진들을 보다 보면 시간이 훅 간다. 구글맵의 360도 사진과 드론이 촬영한 사진들은 굳이 가보지 않아도 될 만큼 큰 감흥을 준다. 이 사진들에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의 기술이 첨부되면 지금의 오프라인 여행 스타일은 확실히 변할 것이다. 그것은 미래의 일이고 지금 나는 이번 여름여행지를 찾고 있다. 무수히 많은 사진과 리뷰 속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사진이 있다. 무의식 속의 기억과 공명을 일으키는 사진. 병풍처럼 둘러 쳐진 웅장한 코카서스 산맥과 하얀 구름층을 바닥에 깔고 산 정상 위에 교회가 앉아 있다.
조지아 카즈베기 지방의 Gergeti Trinity Church.
조지아로 가자. 저 교회를 보러...
옛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던 조지아의 러시아식 옛 이름은 그루지야이다. 남한 면적의 70% 정도이고 코카서스 산맥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미국에서 백인을 'White Caucasian'이라고 한다. 유럽 백인들의 조상이 이 곳에서 살았나 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사슬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던 곳이 코카서스다. 이 곳에 500만도 안 되는 조지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조지아 와인의 역사가 7000년이 넘어 최초의 와인이 탄생한 지역이라 인정받고 있고 소련의 악명 높은 통치자 스탈린이 조지아 사람이란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가는 항공편은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터키항공,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 그리고 알마티를 경유하는 에어 아스타나 중에 선택하는 것이 지금 현재는 최선이다. 터키항공과 아에로플로트는 몇 번씩 타보았으니 이번에는 에어 아스타나를 타보자. 가격도 100불 정도 저렴하다. 에어 아스타나는 카자흐스탄의 국적항공사다. 카자흐스탄의 제일 큰 도시 알마티와 수도인 누르술탄(옛 이름은 아스타나, 지난 3월에 바뀌었단다)을 중심으로 현재 34대의 항공기를 운항하고 있다. 조지아로 가는 길에는 알마티에서 거의 9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귀국 시에는 누르술탄에서 무려 1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어 아스타나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에어 아스타나는 올해 말까지 'Stopover Holidays'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알마티나 누르술탄에서 스탑 오버할 경우 4성급 호텔에서의 숙박을 1달러에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하루만... 공항과 호텔 간의 교통편 제공도 1달러에 포함된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누르술탄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에어 아스타나는 특별요금이 있다. 청소년 요금과 시니어 요금이다. 청소년은 16세에서 25세까지이고 노인은 만 60세 이상이다. 정상요금보다 3~4% 할인요금이다. 내가 시니어에 해당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에어 아스타나에 색다른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다. 이코노미 좌석을 구입하고 출발 전에 좌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데 업그레이드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고 가격을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입찰하는 방식이다. 비즈니스 여석에 대하여 가장 비싼 가격을 제시한 순서대로 업그레이드해준다. 그러나 입찰 최소 가격이 인천-알마티 편도에 45만원 정도이니 요행을 바랄 순 없다. 비교적 작은 항공사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브라질에서 최근 생산을 시작한 중형 여객기 엠브라에르 E190-E2 두 대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비자가 필요 없단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서 아라라트 산이 보인다. 대홍수가 끝나고 노아의 방주가 멈췄던...
코카서스가 점점 내게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