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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08. 2019

조지아 여인의 전화번호를 받다.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 이동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3박을 하고 오늘은 스테판츠민다로 이동해야 한다. 트빌리시에서 150킬로 떨어진 스테판츠민다는 5000미터가 넘는 설산 카즈베기가 보이고 유명한 Gergeti 수도원이 있는 마을이다. 조지아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라 스테판츠민다란 마을 이름 대신에 카즈베기라고 불린다.

트빌리시의 지하철역 디두베에서 카즈베기행 모든 교통편이 출발한다. 조지아의 시외버스(사실은 미니버스)인 마슈룩카가 거의 매시간 출발한단다. 일인당 10라리. 그리고 카즈베기 가는 중간 관광포인트에서 잠시 멈춰 사진 찍을 시간을 주는 미니밴도 있다. 일인당 20라리. 서너 명이면 택시를 대절하여 갈 수도 있다. 보통 운전수 포함 9인승의 미니밴은 관광객이 모여야 출발한다. 일행이 많거나 관광객이 몰리는 시간대면 쉽게 성원을 이루지만 나는 혼자인 데다 일요일 아침 너무 서두른 탓에 8시경에 디두베역에 도착했다. 미니밴 운전기사에 낚여 40분을 기다렸는데도 미니밴에 아무도 늘지 않는다. 20년은 족히 넘었을 벤츠 미니밴의 운전석 옆자리에 내 배낭을 놓고 가장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버스터미널의 번잡함 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다렸다. 미니밴 기사는 메트로 역을 왔다 갔다 하며 열심히 모객 중이다.

어디선가 혜성처럼 나타난 선글라스 낀 금발의 White Caucasian 여인과 헤어스타일과 패션이 틀림없는 중국인 여인 둘이 갑자기 말을 건다. 미니밴을 함께 타고 갈 사람들인가 했다. 자기들이 택시를 대절했는데 더 기다리지 말고 함께 택시 타고 가잔다. 얼마냐고 물으니 thirty와 thirteen을 혼동하는 중국 여인 때문에 금발의 조지아 여인이 전화기에 30을 찍어 내게 보인다. 미니밴 기사한테 미안하다고 하니 상관없단다. 마침 옆에서 지켜보던 미니밴 기사는 상관없단 표정이다. 작은 배낭은 메고 큰 배낭은 들고 여인들을 따라나섰다. 난 참 여자복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떨어진 주차장의 도요타 경차로 나를 안내하더니 조지아 여인이 트렁크를 연다. 큰 배낭만 넣고 작은 배낭은 들고 탔다. 중국 여인에게 내가 앞자리 앉아도 되겠냐고 물으니 자긴 상관없단다. 일본에서 중고로 수입된 경차는 오른쪽 핸들이다. 지금은 나이가 좀 들었지만 젊을 때는 한 미모 했겠다 싶은 조지아 여인이 자기 차인양 운전석에 앉는다. 무릎 위로 올라간 치마 끝자락을 내리며 내 시선을 끈다. 뒤의 빈자리에 어디선가 혜성처럼 나타난 영락없는 조지아 시골 할머니가 탄다.

할머니는 계속 운전하는 조지아 여인과 경상도 사투리 같은 조지아 말로 계속 대화를 한다. 금발의 이 조지아 여인이 카즈베기 사는데 트빌리시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에 관광객 태워 기름값 보태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할머니는 잘 아는 동네 할머니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할 말이 많을까? 경차가 안전도 면에서 좀 떨어져 불안하지만 금발의 조지아 여인이 운전을 우아하게 하겠지 하며 위안을 했다. 복잡한 터미널 구내를 벗어나는데 걸리적거리는 앞차에 대고 연신 경적을 울린다. 심지어 창문 열고 조지아 말로 욕까지 하는 것 같다. 터미널을 벗어나 가까운 주유소로 들어간다. 차를 세우며 기름 값하게 돈 내란다. 난 이미 생을 포기하고 30라리를 건넸는데 중국 여인은 일단 20만 주겠단다. 가서 나머지 주겠다는 의사 표시를 했지만 바로 무시당하고 결국 30라리를 건넸다. 조지아 할머니는...

3기 통이 틀림없는 경차가 성인 넷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제한속도인 시속 110킬로 꼭꼭 채우며 엄청 달린다. 열린 창문을 통한 풍절음과 힘들어 죽겠다는 엔진 소리에 두 조지아 인들의 대화 소리에 정신이 없다. 일 차선을 계속 달려 뒤에서 빵빵대면 마지못해 2차선으로 비켜주길 반복하며 근 한 시간을 달리자 이제는 왕복 2차선 국도로 접어든다. 쌍 클락숀도 아니라 소리도 별로이건만 앞차가 조금이라도 빌빌거리면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린다. 끼어드는 차가 있어 할 수없이 속도를 줄이면 경적과 함께 신경질적으로 욕도 한다. 왕복 2차선에서 우리 차를 추월하는 매우 바쁜 차들이 우리 차를 추월하고 앞으로 들어오면 여지없이 경적을 울린다. 추월 똑바로 하라고... 내가 놀랬다고...

이번 여행을 떠나며 여행자보험을 안 들고 출국한 것이 은근히 걱정된다. 해외여행자보험은 출국 전에 들어야지 출국한 이후에는 보험회사가 안 받아준다. 앱으로 들려해도 결제 전에 꼭 묻는다. 지금 해외인지 아닌지를. 아마도 사고 난 뒤에 보험 가입하고 보험금 청구하는 보험사기를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아예 받지 않는 것 같다. 오른쪽 핸들 차량 운전자보다 조수석에 앉은 내가 앞의 상황이 잘 보인다. 추월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가. 괜히 앞에 앉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차지만 조수석 SRS 에어백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다행이다. 그러나 너무 오래되어 안 터질 수도 있겠단 기계 공학도의 우려도 실재한다.

중간의 아나누리란 곳의 다 허물어져 가는 교회에 정차했다. 10분 둘러보고 사진 찍으라며 차를 세웠다. 계속되던 긴장에 한숨 돌리고 중국 여인과 교회로 내려가는데 어느새 조지아 여인이 입구 기둥에 입 맞추고 있다. 성호를 그으며 교회 안에서 기도를 한다. 오면서 한 무수한 쌍욕을 용서해 달라는 것과 무사히 집에 갈 수 있도록 성모 마리아께서 보호해 달라고 하는 것 같다. 나도 진심으로 기도했다. 조지아 이 길에서는 아직 죽고 싶지 않다고...

달린 지 두 시간이 넘어가자 큰 고개를 넘으며 구다우리란 유명한 스키장 부근을 지난다. 옛날 한계령 고갯길 같은 경사지고 꼬불꼬불한 길에서도 경차를 갖고 거침없이 트럭과 버스를 추월한다. 예사 솜씨가 아니다. 시야가 좋지 않은 곳에서는 추월을 자제한다. 그러나 경적은 계속 울린다. 앞서 달리던 미니밴 기사가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추월하란 신호를 주자 바로 추월하며 창문을 열고 그 기사에게 한마디 한다. 내가 보기에 틀림없이 “복 받을 거야!”라고 했다. 오른쪽 핸들 차량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코카서스 산군의 경치가 끝내주는 구다우리에는 조지아와 러시아의 우정을 기리는 조형물이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사진을 찍기 위해 여기서 잠시 멈춘다. 넓은 주차장에는 패러글라이딩 하라는 호객꾼들이 넘친다. 호객꾼의 대부분이 젊고 늘씬한 조지아 처녀들이다. 아마도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이기 때문이리라. 우리 차도 주차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조지아 처녀가 내게 묻는다. 할 마음은 별로 없지만 터키에서 했던 경험이 있어 얼마인지는 궁금했다. 250라리 란다. 내가 지금은 일행과 함께 택시 타고 카즈베기 가는 중이라 못한다 하니 조지아 처녀 왈 30분 정도 밖에 안 걸린단다. 저 눈 앞의 봉우리에서 뛰어 바로 주차장 옆 공터에 내리는 것이란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경차 운전수가 반색을 하며 기다려줄 수 있단다. 그러니 걱정 말고 하란다. ‘이것은 또 뭐지?’ 아마도 택시기사나 미니밴 기사가 기다려주는 것에 대한 일종의 리베이트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스친다.

구다우리에서 우리의 목적지인 카즈베기까지는 정말 끝내주는 경치의 연속이다. 방목되고 있는 소떼들이 도로 중앙을 배회하는 것도 신기하고 경사진 산에 아글아글 하게 널려 있는 양 떼들도 자유와 평화 그 자체다.

드디어 카즈베기가 보이는 스테판츠민다 마을에 도착했다. 혹시 내가 예약한 Ketino’ Home 호텔까지 데려다주지 않겠냐고 물을까 하다 그만두었다. 어쨌든 내가 평생 경험한 가장 난폭한 운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경험이었다. 이 금발머리의 조지아 여인의 남편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 오는 내내 궁금했다. 맞고 살지는 않는지...

13과 30의 발음을 구분 못하는 중국 여인 Wanda는 홍콩에서 일한단다. 셋이서 여행 중인데 오늘 밤에 트빌리시에서 예레반 가는 야간열차를 타야 하는데 친구 둘은 호스텔에서 쉬고 있고 자기는 날이 너무 좋아 길을 나섰단다. 홍콩 시내에서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들 적발해서 과태료 징수하는 일을 한단다. 홍콩이 영어가 공용어 아니었던가?

호텔에 첵인하고 짐 풀고 날이 너무 좋아 도착한 지 세 시간 만에 산보 나왔다가 마을 중심 광장에서 금발의 조지아 여인 이루마를 반갑게 다시 만났다. 트빌리시 갈 손님이 없어 기다리고 있단다. 오늘 다시 가냐고? 이 경차로 택시 하냐고? 그렇단다. 매일 손님만 있으면 왕복한단다. 그러면서 전화하란다. 트빌리시 갈 때...


드디어 조지아 여인의 전화번호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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