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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09. 2019

Altihut 3014

카즈베기 트레킹


Altihut 3014는 해발고도 3014미터에 있는 산장이다. 카즈베기 정상을 오르는 길에 있는 첫 번째 산장이다.  두 번째 Bethlemi 산장을 거쳐 보통 카즈베기 정상을 오른다. 스테판츠민다에서 유명한 Gergeti 교회(해발 2170미터)까지는 차로 올랐다. 자동차나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는 길을 걸어 오르는 짓은 이제 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지도 않았고 무릎이나 척추도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래된 교회는 가볍게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오전 열시다. 무사히 Altihut 3014를 왕복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카즈베기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겠다는 마음으로 단단히 준비하고 시작했다. 결국 오르는 시간 4시간, 산장에서 두 시간, 내려오는 시간 두 시간 총 8시간의 고된 트레킹이 되었다.

전체적인 경사는 심하지 않으나 중반 이후에 조금 경사가 있을 때 엄청 갈등했다. ‘너 뭐 하고 있니? 카즈베기 정상을 갈 것도 아니면서 웬 개고생이냐?’하는 마음과 ‘구글에서 Altihut을 찾고 꼭 가보고 싶어 했잖아. 카즈베기 정상이 정말 근사하게 보일 거야. 오르는데 세 시간이면 충분하다 했어. 그 정도의 체력은 되잖아.’ 엄청난 갈등 속에서 파우스트의 지킬과 하이드가 생각났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이런 갈등 속에서 하나씩 진행되는 것이라는 것도. 함께 트레킹 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갈등도 덜할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고행을 할 때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산을 오르면서 내내 뒤돌아 보면 멀리 교회와 그 아래의 스테판츠민다가 보였다. 장관이기도 하지만 이쯤에서 돌아가고픈 마음도 계속 있었다. 눈을 들어 앞을 올려다보니 능선이 보이고 능선에 십자가 같은 조형물이 보인다. 사람들이 쉬고 있는 것도 보인다. 저기까지는 가자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땅만 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고산병이 시작되는 3000미터 고도에 이른 것이다. 능선에 도착하니 카즈베기 뿐 아니라 저 멀리 Altihut이 보인다. 능선과 Altihut의 고도 차이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제야 갈등이 사라졌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는 확실한 목표의식이 생겼다. 여기까지 오던 중간에도 십자가 조형물이 하나 더 있었는데 십자가가 꼭 필요한 장소마다 있다. 약한 인간의 마음을 붙잡아 주는 것이 종교다. 역시 할렐루야!

산장은 작년에 지어진 것이라 아주 깨끗하다. 침구도 있고 화장실 샤워실도 갖추어져 있다. 더운물 샤워는 안 된단다. 다음 생에라도 카즈베기를 다시 온다면 산장에서 하루 머물며 카즈베기의 일출을 보고 싶다. 산장 주변에는 십여 개의 화려한 색깔의 텐트들이 근사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산장에서 보는 경치는 압권이다. 5000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바로 눈앞이다. 멀리 빙하가 보이고 빙하를 오르는 사람들도 보인다. 빙하까지는 한 시간, 두 번째 산장까지는 세 시간 이란다. 산장에서 두 시간을 머물렀다. 수프도 먹고 차도 한잔 하면서 카즈베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구름에 가려진 카즈베기가 살짝살짝 정상을 드러낸다. 정상의 모습이 점점 눈에 익으니 쿠빌라이가 연상되기도 하고 달마대사가 보이기도 한다.

하산길은 쉽다. 천천히 뛸 수 있을 정도의 경사다. 그렇게 힘들게 올랐던 길이지만 허무할 정도로 쉬운 길이다. 여유도 있어 쉬고 있는 등반 그룹에 말도 걸었다. 러시아 청년들이었다. 엄청난 짐을 지고 올라간다. 정상 등반을 위해 헤드기어, 밧줄, 그리고 아이젠까지 배낭에 달려 있다. 4박을 생각하고 등반 중이지만 날씨에 따라 육칠일 걸릴 수도 있단다. 나도 대학시절 텐트 및 온갖 취사도구 메고 설악산을 일주일씩 헤맨 적도 있지만 이제는 틀렸다. 소위 ‘이생망’이다.

거의 다 내려왔는데 Gergeti 교회가 아주 잘 보이는 마지막 언덕에 남녀 한쌍이 그림 같은 모습을 하고 앉아 있다. 그들의 뒷모습을 오늘의 마지막 사진으로 찍었다. 이제는 아침에 택시 타고 올라온 교회가 300미터쯤 앞에 보인다. 도저히 더는 걸어서 못 내려가겠다. 차를 히치하이킹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든 차들이 내려가는 길목에 서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1분도 안되어 처음 지나가는 차가 속도를 줄이고 선다. 도요타 캠리 신형이다. 운전석에는 짙은 선글라스를 쓴 아름답고 젊은 여인이 보인다. 조수석에는 한 남자가 타고 있다. 할 수 없이 뒷자리에 타는데 가죽시트다. 땀에 절은 몸을 기대도 될까 잠깐 망설이며 감사 표시를 하고 탔다. 백미러를 통하여 여인이 묻는다. 어디서 왔냐고? Korea라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답례로 나도 물었다. 어디서 왔냐고. 그러자 앞에 앉아 있던 남자가 대꾸한다. 자신은 벨기에고 여인은 조지아란다. 여인이 묻는다. 조지아에서 히치하이킹해봤냐고. 지난 트빌리시 골프장 샤워실에서 했는데 포르셰였다고. 벨기에 남자가 다음에는 페라리겠다고 거든다. 조지아 여인이 스바네티는 가봤냐고 묻는다. 아직이라고 답하며 스바네티가 카즈베기보다 좋으냐고 물었다. “Definitely!” 좋단다. 스바네티 지방은 메스티아, 우쉬굴리 등의 마을에서 트레킹 하는 명소이다. 트빌리시에서 좀 멀어 사실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이틀 동안 이미 예약된 근처 주타트레킹을 끝내고 젊고 아름다운 조지아 여인이 강추한 스바네티로 가야겠다.

난 참 복이 많다!
God always bless me!



사족: 교회 근처 주차장 옆에 말들이 있는데 Altihut 3014 까지 한마리에 150라리라고...

스테판츠민다에서 아침
갈등을 멈추게 한 십자가 조형물
드디어 멀리 산장이 보인다
카즈베기와 빙하 그리고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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