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rica hostel & Tibilisi hills golf
간혹 인간이 만든 근사한 공간이 있다. 조지아 트빌리시의 Fabrica Hostel이 그렇다. 이 호스텔 곳곳에서 우아함을 느낀다.
도심 속에 반지하층을 포함하여 4층의 공장 건물을 호스텔로 완전히 리모델링했다. 한층은 로비라운지와 식당으로 만들었고 두 개 층이 객실이다. 로비라운지의 우아함이 웬만한 특급호텔 수준이다. 도미토리가 기본이지만 욕실 딸린 트윈룸도 여럿 있다. 반지하층은 뒤편으로 상가를 만들었다. 상가 앞에는 광장이 있고 광장 건너편에는 길게 식당가가 조성되어 있다. 일곱 곳 정도의 식당 중에 스시집과 라멘집이 있어 나를 엄청 기쁘게 한다. 매일 밤 이 광장은 그야말로 젊음의 도가니다. 전 세계에서 온 젊은이들과 조지아의 젊은이들이 함께 어울린다. 나 같은 동양의 중늙은이에게는 맞지 않지만 나도 그 젊음이 좋아 종종 기웃거린다. 낮에는 조용하고 깨끗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호스텔은 원래가 공장 건물이라 모든 층의 천정이 높다. 높은 층고가 왠지 좋다. 깔끔한 욕실, 철제 이층 침대 및 깨끗한 침구들이 맘에 든다. 로비라운지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노트북을 앞에 놓고 무엇인가 하고 있다.
호스텔의 규모가 크다 보니 다양한 프로그램도 매일 진행된다. 어제는 옥상 루프탑에서 무료 요가 강습이 저녁 8시부터 있었다. 옥상의 전망이 좋을 것 같아 사진 찍으려 올라갔다가 얼떨결에 요가 강습을 난생처음 받았다. 핑크빛 레깅스만 입은 늘씬한 요가 선생님의 카리스마가 나를 도망 못 가게 했다. 처음 시작은 관절 풀기라 따라 할 만했는데 온갖 비틀기로 넘어가자 육십 넘은 몸이 아우성친다. 내 몸은 원래부터 뻣뻣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너무 힘들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파트너를 정하란다. 여자가 열댓 명 남자가 7명 정도였는데 내가 가장 노인네 였다. 혼자 와서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 것을 눈치챈 카리스마 짱인 선생님이 홀로 있는 젊은 여자 한 명에게 나랑 파트너 하라고 지명했다. 파트너는 구했으나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파트너와 선생님을 번갈아 보고 있는데, 한 명은 바닥에 누워 파트너를 두 손과 무릎으로 지탱하는 자세를 취하란다. 초등학교 체조시간에나 하던 자세다. 젊은 여인의 무릎에 내 허벅지를 올리고 내 팔뚝 부위를 파트너가 손으로 받치고 있는 자세를 만들란다. 그리고 교대하란다. 금발의 젊은 우크라이나 처녀를 무릎과 손으로 들고 한동안 어쩔 줄 몰라했다.
금요일 저녁인 오늘은 루프탑에서 바비큐 파티가 있다. 불금에 25라리를 내고 참가했다. 노르웨이에서 온 중년의 커플과 네덜란드에서 장성한 아들 둘과 함께 온 부부, 두바이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는 필리핀 청년과 나뿐이다. 바비큐 대신 햄버거와 맥주가 제공되고 조지아 전통술인 차차도 파티 진행을 맡은 조지아 여인 마야가 갖고 왔다. 대부분 자기소개와 조지아 여행 관련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석양을 함께 즐겼다. 지나간 음악들에 맞춰 흔들기도 하면서 한 시간 반 정도 지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황망한 끝이 되긴 했지만 불금 저녁도 해결했고 일몰의 우아함도 충분히 즐겼다.
이렇게 좋은 공간에 동양인이 별로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트빌리시에서 가장 유명한 호스텔인데... 골프장 카운터를 지키는 조지아 여인 소피도 이 곳을 알고 있었다. 골프를 마치고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할 때 어디까지 가냐고 묻길래 Fabrica는 모를 것 같아 근처 지하철역을 대야 하나 하고 망설였다.
나는 이 공간의 우아함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가슴 저린 전망을 나는 여행하며 자주 마주한다. 여름에 보는 설산이나 노을 지는 바닷가에서도 만나지만 골프장에서도 자주 만난다. 대부분의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보는 전망이 그렇다. 그 골프장에서 제일 좋은 전망은 보통 클럽하우스에 있다. 골프장 부지 중에서 제일 높은 곳에 클럽하우스를 짓는다.
한국의 산사(절)에서 가장 좋은 전망은 대웅전 바로 앞에서 부처님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이라고 한다. 가장 좋은 전망을 부처님께 드리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래서 절을 방문하면 대웅전 바로 앞에서 부처님을 뒤로하고 부처님이 보고 계신 전망을 즐겨야 한다 했다.
조지아에서 가장 전망 좋은 골프장 Tibilisi Hills golf club을 다시 찾았다. (조지아에는 골프장이 아직 하나밖에 없다) 지난번 처음 왔을 때 좋은 전망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 후반 플레이에 들어가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멀리 검은 구름이 보이더니 천둥소리도 들려 서둘러 플레이를 끝내려 했으나 한 홀 남기고 결국 비가 쏟아졌다. 비 맞으며 프로샵으로 들어오니 얼마나 못 쳤냐고 묻는다. 특유의 잔머리를 굴려 다섯 홀 못 쳤다고 했더니 9홀 레인 첵을 주겠단다. 레인 첵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이 전망 좋은 골프장을 다시 와야 한다는 것이 왠지 뿌듯하다.
샤워를 하고 클럽하우스 테라스에서 맥주와 함께 보는 전망이 끝내준다. 조지아의 들판이 저 멀리 내려다 보이고, 좌측 하늘은 밝은데 우측 하늘은 검은 구름과 함께 비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끔 번개 치는 것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대부분 좋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산을 오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새의 눈으로 보고 싶어 스카이다이빙, 패러글라이딩 및 열기구 투어가 그렇게 인기 있는 액티비티가 된 것이리라.
우아한 공간을 즐기고 아름다운 전망을 보기 위해 혼자라도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