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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19. 2019

Ali and Nino

바투미, 조지아


흑해 연안의 휴양도시 바투미에 갈 생각은 없었다. 난 수영도 좋아하지 않는데 혼자 바닷가에서 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조지아의 알프스라는 메스티아에서 4 밤이나 자면서 이미 조지아 여행의 베이스캠프인 트빌리시로 돌아갈 마음이었다. 메스티아 출발 전 날 인스타그램에서 본 동영상이 마음을 흔들었다.

이즈음 인스타나 페북에서 광고와 홍보하는 아주 개인적인 여행사들이 많다. 소규모 그룹을 위한 아주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여행사 중의 하나가 올린 동영상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서 있는 남녀 조각상이 천천히 다가서다 합체하고 다시 헤어지는 영상이었다. 그 조각상의 사진은 이미 여행 준비기간에 여러 번 보았지만 움직이는 것인 줄은 전혀 몰랐다.

이미 산 버스표를 변경하여 아침 8시에 메스티아를 출발했다.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하는 시간 포함하여 6시간 반이나 걸려 흑해가 펼쳐진 바투미에 오후에 도착했다. 숙소에 일단 짐을 두고 바로 그 조각상 ‘Ali and Nino’를 보러 바투미 중심 해변으로 나왔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잠시 피하고 찾은 조각상은 생각보다는 작았다. 나는 멀리서도 잘 보일 줄 알았다. 2010년에 해변공원 내에 8미터 높이로 세워진 조각상은 조지아의 옛 소설 속의 인물들이다. 회교국인 아제르바이잔의 왕자 Ali와 기독교국가인 조지아의 공주 Nino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영감 받은 것이란다. 조지아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두 개의 남녀 조각상은 각각 두 개의 원을 그리며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돈다. 두 개의 원은 살짝 겹친다. 겹치는 부분에서 두 개의 조각상은 완전 합체가 아니라 50%만 겹친다. 소위 두 남녀가 음악에 맞춰 블루스를 추면 남자의 오른발이 여자의 두 발 사이에 위치한다. 여자의 오른발은 남자의 두 발 사이다. 그 상태에서 합쳐지며 지나가게 만든 것이다. 합체와 분리의 순간을 기계 공학도의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본업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제 오후에 도착하여 움직이는 ‘Ali and Nino’도 보았고 관람차도 탔고 심지어 도심의 케이블카도 탔기에 바투미에서 볼 것은 다 보았다 생각하고 오늘 오후의 기차 시간까지는 숙소 앞 해변에서 책이나 보다가 첵 아웃하려 했다. 유발 하라리의 두꺼운 책을 들고 숙소를 나서는 순간 시내 나가는 마을버스를 순간적으로 세웠다. 어제 본 조각상을 다시 보고픈 무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결국 ‘Ali and Nino’를 다시 보고 해변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확실히 두 번째는 감동은 적지만 여유가 있다. 난 그 여유가 좋다. 그 여유를 즐기고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묘한 짠함이 있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도 그렇고, 이루지 못할 사랑이나 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본 동영상에 내 무의식이 반응한 것이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내 환상이. 그래서 멀리 바투미까지 왔다.

합체를 끝내는 장면
흑해 해변의 음식점
곤도라 타고 오른 정상에서 본 바투미 야경
바투미 시내는 꼭 유럽 같다


타임랩스로 찍은 동영상은 유튜브에 많다.

https://youtu.be/oQea4Z6pc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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