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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ul 23. 2019

메스티아 코룰디호수

감탄은 고통에 비례한다.


근사한 경관을 갖고 있는 곳을 난생처음 어렵게 찾아 가면 감탄이고 감동이다. 그런 감동을 얻고자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힘들게 산을 오른다. 고생해서 찾으면 감동도 더 크고 기억도 오래 남는다. 고생 없이 얻은 경치에는 감탄도 별로 없다.

조지아의 메스티아에서 하는 트레킹 중에 제일 힘든 코스 중에 하나가 코룰디호수까지 메스티아에서 걸어서 갔다 오는 것이다. 호수에서 얼마나 머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한 왕복 8시간 이상 걸린다. 메스티아의 뒷산은 엄청 가팔라 시작부터 끔찍하다. 거의 직벽이라 생각되는 뒷산을 두 시간 이상 오르면 절벽 위 십자가와 전망대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오색약수터에서 대청봉 오르는 길보다 경사가 더 심하다. 십자가부터는 완만한 경사로 또 두 시간 이상 걸어야 한다. 어떤 한국 젊은이가 이 길을 다 걸어서 코룰디호수까지 갔다가 호수의 경치에 탄성을 자아내고 그 감동을 조지아 여행 카페 게시판에 남겼다. 가져간 2리터의 물을 다 마셨다면서. 조지아에서 제일 근사했다고.

그러나 코룰디호수까지 차로도 갈 수 있다. 처음의 직벽에 가까운 코스는 멀리 옆으로 돌아 오르고 그 이후는 완만하여 사륜구동이면 충분히 쉽게 갈 수 있다. 카즈베기 가는 길에 택시 합승을 함께 했던 중국 처자 완다는 코룰디호수까지 차로 갔다 왔는데 호수가 코딱지 만한 게 볼 게 없다고 내게 말했다.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가는데 너무 좌우로 흔들려 힘들기만 하고 별로였다 했다. 똑같은 호수를 걸어서 오른 사람과 차로 간 사람의 감동과 후기가 이렇게 다를 수가. 반대도 완전 반대다.

그래서 난 반씩 하기로 했다. 메스티아에서 십자가까지는 80라리, 코룰디호수까지는 150라리란다. 난 십자가까지만 올려달라 했다. 언제 내려올지 모르니 기다리지 말라했다. 누가 대기하고 있다면 마음이 불편하여 여유 있게 충분히 즐기지 못한다. 바바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든든한 아침(계란 두 개 필히 포함)을 먹고 점심으로 샌드위치 도시락도 싸고 초콜릿과 물도 챙기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중간 십자가에서 두 시간 정도 걸어 오르니 이제 힘에 부친다. 150라리 주고 호수까지 데려달라 할 걸 그랬나 하며 후회할 즈음에 새로운 십자가가 보인다. 앙상하고 어깨가 처진 노란 십자가다. 어깨가 처진 것이 왠지 슬퍼 보인다. 조지아 경험상 저 노란 십자가가 코룰디호수에 거의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역시 십자가 바로 뒤가 호수다. 작은 네 개의 호수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처자 말대로 조그맣고 볼품없다. 그러나 이 곳의 해발이 3000미터가 넘는다. 나무 한그루 없으니 그늘도 없지만 주변 높은 봉우리들과 어깨를 함께 하고 있다. 특히 남동쪽으로 테트눌디 정상과 빙하가 근사하게 보인다.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는데 큰 배낭을 각각 둘러멘 젊은 White Caucasian 커플이 산에서 내려온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산에서 텐트 치고 4박이나 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봤단다. 어젯밤에는 비도 많이 왔는데... 스웨덴 남자와 스위스 여자란다. 어떻게 만난 사이인지는 차마 묻지 못했다. 이제 내려간단다. ‘Real food’ 먹으러. 난 젊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젊음이 부럽다. 그들의 자유와 여유가 부럽다. 코카서스 산맥을 그들보다 더 완벽하게 즐길 수는 없을 것 같다.

힘든 만큼 감동도 크다. 감탄은 고통에 비례한다. 그래서 너무 쉬운 길로만 다니다 보면 모든 것에 무덤덤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힘든 길을 고집하면 평생 써야 하는 무릎이 상하고 심하면 포기할지도 모른다. 급경사를 내려오느라 잔뜩 긴장했던 허벅지 앞 근육들이 며칠째 단단하게 뭉쳐있다.

메스티아 뒷산 십자가
십자가 전망대
나를 구원한 앙상하고 슬픈 십자가
3300미터쯤 오른듯
스바네티지방의 중심 메스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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