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ul 24. 2019

좋은 곳은 세 번 가야 한다.

첫 번째는 감동, 두 번째는 여유, 세 번째는 습관


좋은 곳을 처음 힘들게 가면 감동이다. 같은 장소를 두 번째 가면 여유다. 처음 왔을 때 보지 못한 것도 보고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세 번째 가면 습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알 것 다 아니까...

조지아의 유일한 18홀 골프장 Tbilisi hills golf club을 세 번째 찾았다. 사실 세 번 까지 올 마음은 없었지만 두 번째 라운딩 끝에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레인 첵을 받았기에 안 올 수가 없었다.

조지아에 3주 머무는 동안에 트빌리시에 세 번 머무르게 되었다. 친근감이 들기도 하지만 조지아 여행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모든 교통망이 트빌리시에서 뻗어 나간다. 결국 트빌리시에서 11박, 카즈베기 4박, 메스티아 4박, 바투미 1박으로 조지아 여행을 마무리할 것 같다.

골프를 혼자 무슨 재미로 치냐는 사람도 있지만 난 혼자서 치는 것도 좋다. 골프는 결국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내 스코어는 나와의 경쟁이다. 멀리건을 몇 개 주느냐도 오케이를 어느 거리에서 허용하느냐도 결국 나와의 문제다. 동반자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충분히 자신과 경쟁하며 즐길 수 있는 것이 골프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세 번 째는 너무 익숙하여 습관적이다. Yandex.Taxi 불러 골프장 가는 것이나 프로샵에서의 계산이나 락커룸에서의 환복이나 너무 자연스럽다. 레인 첵은 그린피에 대한 것이라 골프채 대여와 카트 대여에는 해당이 없다. 세 번째 만나는 프로샵의 Sofia도 오래 알던 사이 같다. 렌털 골프채의 스펙에 대해서도 이제는 훨씬 자세하게 요구할 수 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주차장에도 차가 제법 있다. 잘하면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차편은 히치하이킹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삶은 달걀 두 개, 초콜릿도 갖고 왔으니 중간에 배고플 일도 없다. 사실 처음 왔을 때는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팠다.

혼자 플레이하니 역시 속도가 빠르다. 3홀쯤 지나니 앞의 팀을 보게 되었다. 나이 든 아저씨와 젊은 여자가 함께 플레이하고 있다. 부녀지간이란 느낌이 든다. 혼자 뒤에 따라오는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기다리며 나더러 패스하란다. 나도 사실 천천히 음미하며 골프를 치지만 아무래도 그들보단 속도가 너무 빠르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능한 한 빨리 그들을 패스했다. 패스할 때 의도치 않은 갤러리가 생기니 특히 더 잘 쳐야 한다. 그리고 딱 네 개 남은 골프공이 전부라 잘 쳐야 한다. 라운딩 중간에 공이 다 없어지면 그보다 낭패일 순 없다.

조지아 골프장이 나와 케미가 맞는지 오늘도 잘되고 있다. 초콜릿도 먹으며 몇 홀 지나다 보니 이제는 수동 카트를 끌고 있는 4명의 조지아인들이 앞에 있다. 그들도 나를 인식하는 듯하다. 앞에서 나더러 티샷 하라고 손짓한다. 이럴 때 잘 쳐야 한다. 쪼로내거나 OB내면 안된다. 내 구력이 30년이 넘다 보니 크게 실수하지 않고 드라이버를 쳤다. 내 경험으론 10년은 넘게 골프를 쳐야 이런 순간 당황하지 않는다. 초보시절에는 당황하여 공을 엉뚱한 곳으로 보낸다.

거의 세 시간 만에 18홀을 끝냈다. 여유 있는 샤워를 하고 전망 끝내주는 클럽하우스 테라스에 맥주도 한잔하고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프로샵의 소피아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하든지 주차장으로 가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든지. 조지아에서 두 번의 성공적인 히치하이킹 기억을 살려 주차장으로 갔다. 클럽하우스에서 주차장 가는 길에 아까 나를 패스시켜준 남녀가 골프채를 들고 앞서 가고 있다. 지금 막 플레이를 끝냈나 보다. 랜드로바 이보크 트렁크를 열고 골프채를 싣고 있는 남녀에게 지금 떠나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트빌리시까지 태워줄 수 있냐고 물었다. 태워준단다. 랜드로바 이보크는 트렁크가 작아 뒷자리 반을 접어 골프채를 실어야 한다. 내가 탈 뒷자리에 베이비 시트가 얹혀 있다. 미안스럽게도 힘들게 베이비 시트를 떼어 내 자리를 마련해준다. 나이 든 아저씨가 조수석에 앉고 젊은 여인이 운전대를 잡더니 나더러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Korea라고 하고 나도 답례로 여기 사냐고 물었다. 조수석의 아저씨가 자신은 노르웨이고 운전하는 딸은 조지아란다. 노르웨이 여인이 왜 조지아에 사냐고 물었다. 조지아에서 일하다가 조지아 남편을 만나 아이 낳고 9년째 조지아에 산단다. 조지아에서 여자가 랜드로바 이보크를 운전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아줌마가 마세라티를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노르웨이 출신 조지아 아줌마가 묻는다. 어떻게 조지아을 알고 여행 왔냐고? 조지아 여행하면서 이 질문 여러 번 받았다. 여기저기 여행 많이 해서 심지어 노르웨이도 여행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만약 내 딸이 노르웨이와 조지아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 산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결혼한 내 딸은 지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 수시로 만나고 심지어 남편 출장 가면 애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자는데... 자주 만나 아무리 부대껴도 싫지 않은 것은 결국 가족이다. 여름휴가철에 조지아 사는 딸 만나러 와 함께 골프 치는 노르웨이 할아버지도 좋겠지만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딸과 손자가 있는 내 인생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내일이면 조지아 떠나 한국 간다. 3주 만에 딸과 손자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메스티아 코룰디호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