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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ug 11. 2019

오토바이에 대한 환상

청산할 수 없는 인간관계란 없다.


사람들은 오토바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브런치의 가장 조회수 높은 글은 '육순에 오토바이 면허 취득기( https://brunch.co.kr/@jkyoon/170​ )’입니다. 150cc 이상의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2종 소형면허란 키워드로 검색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도 오토바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 환상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란 것을 저는 압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나 자유에 대한 환상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때의 그 뿌듯함, 처음 운전면허를 따고 일반도로에서 운전을 시작할 때의 그 설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토바이는 자전거보다 훨씬 속도가 빨라 더 자극적입니다. 두 바퀴로 굴러가니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이 곤두섭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의 화자가 오토바이입니다. 오토바이는 자유를 상징합니다. 빠른 속도로 달릴 때 흘려지는 인생이 아니라 흘러가는 인생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목숨 걸고 타는 것이 오토바이입니다. 그만큼 위험합니다. 제가 봤던 자료에는 자동차 운전보다 오토바이 운전이 11배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오토바이 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서 10시간 연습 주행하는 중에도 넘어지는 오토바이에 깔려 발 받침대에 왼쪽 정강이를 찍혔습니다. 2년이 다되어 가지만 아직 그 상처의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중에 오른손 핸들에 달려 있는 액셀을 의도적으로 끝까지 확 당겨 버리면 바로 이승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마루야마 소설 속 오토바이의 두 번째 주인은 커브길에서 그렇게 하늘을 날아올랐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젊은 시절 오토바이 모는 마루야마 겐지의 얼굴 사진은 정말 근사합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만 정말 카리스마가 넘칩니다. 오토바이 면허가 있는 저는 전율을 느낍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마루야마 겐지의 완벽한 자유가 느껴집니다. ‘청산할 수 없는 인간관계란 없다.'란 문장이 저를 놀라게 합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이미 모든 관계를 청산한 듯 보입니다. 모든 관계를 청산했다면 오토바이를 타세요. 모든 관계를 청산해야 자유로울 수 있고, 흘려지는 인생이 아닌 흘러가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 청산하지 못하여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고 아직도 흘려보내지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오토바이 면허를 딸 때 사용하라고 친구가 준 헬맷이 아직도 제 방에 있습니다. 먼지 묻지 않게 어느 명품백을 포장하던 흰 주머니에 넣어져 있지만 볼링공보다 큰 검은색의 둥근 헬맷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망설임의 주된 원인은, 요컨대 나머지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그 길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도 길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상태로 생을 마감할까 봐 사실 두렵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려면 순발력을 비롯한 근력과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피할 수 있는 순발력과 속도에 대한 균형감각이 정말 중요합니다. 달리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지, 아차 하는 순간 오토바이는 넘어집니다.

바닥에 앉고 일어날 때마다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집니다. 허벅지나 팔뚝의 탱탱하던 근육은 이제는 말랑말랑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이 먹다가는 모든 관계를 청산해 자유가 왔어도 오토바이를 모는 자유를 하루도 즐기지 못하고 바로 저승으로 갈까 봐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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