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Jan 08. 2020

발리 3

냉소적인 호모 사피엔스가 되고 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니 우붓도 덥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다. 3박을 리조트 예약을 했으니 오늘 온전한 하루가 더 있다. 외부 일정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이 더위에 나가기 싫다. 앞으로는 2박씩만 한 곳에 예약해야겠다. 우붓의 한국식당을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찾아 놓았다. 저녁을 가서 해결하기로 하고 낮에는 리조트에서 개겨야겠다.

에어컨이 24시간 돌고 있는 리조트 방안이 천국이다. 가끔 찍찍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서 난다. 처음엔 당황했다. 벽과 천정을 돌아다니는 작은 도마뱀이 내는 소리다. 쥐 소리 같기도 새소리 같기도 두꺼비 소리 같기도 하다. 도마뱀이 벽에 붙어 있는 벌레를  잡아먹는 광경을 보았다. 동물의 왕국을 보았다.

모기는 먹을 것이 없어서  안 잡아먹는지 방 안에도 제법 있다. 액체 전자 모기향을 24시간 켜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미 여러 군데 물렸다. 큰 침대에 모기장을 두르고 그 안에서 ‘사피엔스’를 다시 정독하면서 유발 하라리의 지성에 감탄하고 있다. 집이나 내 연구실에서 읽어도 될 책을 왜 여기서 읽고 있나 싶기도 하다. 낯선 공간에 혼자 있으면 모든 감각이 긴장한다. 그 긴장감이 집중력을 배가하여 읽었던 책도 새롭게 이해된다.

오후에는 리조트 안의 마사지샵을 갔다. Balinese massage & Body scrub 한 시간 반이 우리 돈 38,000원이다. 인도네시아 젊은 여인의 손길이 온몸 구석구석 닿으니 기분 좋다.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이란 상상의 산물이고 동물인 인간은 쾌락을 느낄 뿐이라 했다. 호르몬의 작용이 오래가지 못하기에 쾌락은 잠깐 뿐이란다. Body scrub은 처음 해 보았는데 초콜릿, 재스민, 생강 중에 선택하라 하여 초콜릿을 선택했다. 초콜릿 용액을 몸에 바르고 잠시 뒤에 여인의 손으로 북북 문질러 굳은 초콜릿을 떼어낸다. 몸에서 초콜릿 냄새가 난다.

 

해가 넘어갈 시간이 되자 제법 온도가 내려갔다. 이 정도면 나가볼 만하다. 셔틀을 타고 우붓 다운타운으로 갔다. 호텔, 음식점, 카페, 갤러리, 마사지샵, 옷가게, 기념품 가게, 여행사, 환전소 들로 일대가 꽉 차 있다. 이 많은 업소와 이 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외국 관광객을 상대하며 살고 있다. 구글맵으로 Sinssi Wharo를 찾아가니 작지만 깨끗한 고깃집이다. 삼겹살 200그램, 비빔국수, 맥주 2 병이 낮에 받은 마사지 값이다. 소주 한 병을 주문할 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혼자서 소주 한 병을 해치울 만큼 술을 좋아하진 않는다.


나는 왜 틈만 나면 혼자라도 어딘가로 떠나는 것일까? 자유를 찾아서? 웃기지 말라 해라. 실재하지 않는 자유를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여분의 시간 아니면 일 할 것이 없는 잉여의 시간을 뭔가는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해외여행을. 공항에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짐을 싸들고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은 해외여행에 굶주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게이트 앞에서 보면 대기 중인 비행기들이 한없이 일렬로 주기 중이다. 이륙 활주로에 들어서기 위해 비행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륙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을 해외로 실어 나르기 위해.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중략. 소비지상주의는 우리에게 행복해지려면 가능한 한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략. 다양성을 권하는 낭만주의는 소비지상주의와 꼭 들어맞는다. 양자의 결합은 현대 여행산업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무한한 경험의 시장을 탄생시켰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


여행은 경험을 사는 것이라 했다. 그런 경험들이 자신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소유하지 말고 존재하라 했다. 경험을 사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존재를 느끼는 순간이 의미 있는 인생의 순간이라고. 과연 의미 있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 얼마나 있냐고 마루야마 겐지는 소리쳤다.


나도 냉소적인 호모 사피엔스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발리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