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o Batur
보기엔 너무 근사한 숙소다. 눈 앞에 Volcano Batur가 말 그대로 Panoramic 하게 펼쳐져 있고 파란 작은 수영장과 하얀 선베드가 우아하고 근사한 조합으로 배치되어 있다. 숙소 이름이 ‘Batur Panorama’이다.
우붓에서 Grab을 불러 Batur 산자락에 왔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우붓이 더워서 좀 더 높은 곳으로 가면 혹시 시원할까 하여 왔다. 역시 시원하다. 활화산인 Batur는 해발 1712미터이고 산자락 동네인 Kintamani 지역은 해발 1200미터 정도인 것 같다. 1000미터 오르면 기온이 5도 정도 떨어진다.
Batur Panorama는 오픈한 지 몇 달 안되었다. 정문 기초석에 10. 10. 2019라 쓰여 있다. 딱 네 채의 cottage와 전망 좋은 수영장이 있다. 그런데 파리가 장난 아니다. 주변이 밭이라 여름철 우기에는 어쩔 수 없단다. 너무 외진 곳이라 점심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아 볶음국수와 맥주를 시켰는데 파리 등쌀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맥주잔 안에 파리가 빠져 헤엄친다. 여기서 이틀 동안 파리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다 좋을 수 없다.
Volcano Batur는 해발 1400미터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면 오른다. 관광객들이 산 정상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이 오른다. 산 정상에는 일출을 편히 볼 수 있는 긴 의자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커피 같은 음료를 파는 움막 같은 시설들이 정상 주변에 많다.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오후 네시에 가이드 코마를 구했다. 칼데라 호수인 Danau Batur를 내려다보며 등정을 시작했다. 사람이 없다. 다들 새벽에 보고 간 것이다. 사람들은 Sunset보다 Sunrise를 선호한다. 호수 건너편으로 Batur와 거의 같은 높이의 Abang산이 보이고 그 너머에 발리에서 가장 높은 Volcano Agung의 정상이 빼꼼 보인다. Agung은 3000미터가 넘기도 하지만 가끔 연기를 내뿜으며 아주 활동적이라 등정 금지라고 어디서 읽었다.
Volcano Batur 정상 바로 옆은 1930년대의 폭발로 생긴 200미터 이상의 깊고 큰 Crater가 있고 주변으로 길이 나 있다. 정상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 Crater 서쪽으로 가는 중에 수증기가 나오는 구멍이 여럿 있다. 이 산도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낀다. 가장 최근의 움직임은 2000년이었단다. Sunset point는 불행히도 구름에 휩싸여 있다. 노란 달걀노른자가 구름 뒤에서 보일 듯 말 듯 한다. 가이드 코마는 춥다며 담요를 덮어쓰고 앉아 기다린다. 구름 때문에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몰을 기다리다가는 깜깜한 하산길이 걱정되어 그만 가자고 했다. 일몰을 보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기다려보지도 않는 것을 코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일몰은 매일 있다. 그러기에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일몰은 언제 어디서나 새롭다. 주변 환경과 조건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스모그 여부, 구름의 형상뿐 아니라 수평선, 지평선 아니면 빌딩 숲이냐 야산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때론 감탄하기도 하고 때론 죽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하산길 도중에 구름 사이로 태양의 마지막 타는 불꽃을 보았다. 노랗게 물든 구름의 한 조각이 마지막 거친 숨을 느끼게 한다. 일찍 내려오길 잘했다. 타고 왔던 스쿠터가 주차되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어둠이 주변을 완전히 덮었다.
또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