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할 쿠바에서의 마지막 밤
쿠바는 카리브해의 가늘고 긴 섬나라이다. 그 길이가 1200킬로나 된다. 모양이 악어 같다 하여 '카리브해의 악어'란 별칭도 갖고 있다. 면적은 남한 면적보다는 좀 크다. 인구는 1100 만이 넘는다고 한다. 아직도 공산당 일당독재 하에 있고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하여 정말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쿠바에서 세미 투어를 8박 하고 할아버지 셋이서 렌터카 여행을 7박 했다. 마지막 밤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푹 쉬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싶었다. 귀국행 비행기는 아바나에서 멕시코 시티까지 세 시간, 멕시코 시티에서 환승 대기 5시간 반, 그리고 인천까지 직항 15시간 반이다. 24시간의 끔찍한 여정이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아바나 왕복 항공료로 70여만 원을 지불했는데, 멕시코 시티에서 인천까지의 편도를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가격이 1100불이란다.
아바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 오전 11시까지 렌터카를 반납해야 하고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후 세시다.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은 아바나 도심에서 남쪽으로 22킬로 떨어져 있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공항 근처에 호텔이 거의 없다. 오히려 공항보다 남쪽으로 18킬로 떨어진 곳에 Yagrumas 란 호텔을 부킹닷컴에서 찾았다. 가격도 착했다. 더블룸을 혼자 사용하면 하루 밤에 30불이다. 에어컨, 온수 그리고 주차장만 있으면 하루 조용히 쉬고 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바나 도심은 렌터카를 주차할 만한 공간이 없다. Hotel Yagrumas는 지도 상에 보기에도 제법 큰 호텔이라 오후에 일찍 도착만 하면 방을 구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산타 클라라 외곽의 Hotel Los Caneyes에서 7시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마탄사스 부근의 전망 좋은 Mirador를 거쳐 지금은 폐허가 된 옛 Hersey 공장을 둘러보고 오후 4시경에 Hotel Yagrumas에 도착했다. 큰 야외수영장이 있는 리조트 형태인데 건물의 외관은 매우 오래되어 보였다. 방은 있으나 더운물이 안 나온단다. 쿠바의 날씨가 찬 물로도 샤워할 수 있는 정도라 그 정도는 감수할 마음으로 첵인을 했다.
큰 수영장을 둘러싸고 2층 건물이 늘어서 있는데 호텔 로비와 우리의 방은 거의 대각선이라 제법 멀다. 키를 받아 배낭을 메고 방으로 들어와 보니 바닥이 옛날 국민학교 건물의 현관 바닥(도끼다시) 같은 시멘트 바닥이다. 엄청 소리 나는 창문형 에어컨의 조절 버튼은 헛돌기만 하여 에어컨의 작동은 파워 코드의 플러그를 콘센트에 넣다 뺏다 해야 한다. 그 정도는 쿠바에서 참을 수 있다. 문제는 온수는커녕 아예 물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전화기도 없으니 로비까지 가서 얘기했다. 오후 6시부터 물이 나온단다. 이미 다섯 시가 넘었기에 일단 아바나로 가서 저녁을 먹고 오기로 했다.
렌터카 여행 중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게 되는데 쿠바의 휴게소의 식사는 햄치즈 샌드위치뿐이었다. 딱 햄과 치즈만 들어 있는 샌드위치로 3번 점심식사를 했다. 라면과 컵라면으로 두 번 식사했고 누룽지와 볶음 김치 통조림으로 식사한 적도 있다. 할아버지 셋은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아바나에 하나 있는 한국 음식점 (Amir Shisha, 지금은 아랍 음식이 메인이고 비빔밥과 김치볶음밥 같은 단품을 제공한다)으로 차를 몰았다. 아직 렌터카에 연료는 충분히 있다. 쿠바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김밥과 돌솥비빔밥을 주문했다. 숟가락과 돌솥의 부딪히는 소리가 아쉽게 느껴졌다. 스님들처럼 밥알 한 톨 없이 돌솥을 깨끗하게 비웠다. 이제 호텔로 돌아가서 샤워하고 푹 자면 된다.
그러나 저녁 8시에도 물이 안 나온다. 지금 물탱크를 채우고 있으니 30분만 기다리란다. 한 시간 뒤에 하는 말이 오늘 이 일대가 전부 단수란다. 내일 아침에도 어떨지 알 수 없단다. 수영장에는 물이 많다. 도저히 안 씻고는 못 자겠다. 결국 환불받고 호텔을 찾아 나선 것이 이미 밤 열시다. 설마 방이 없을까? 그때부터 Maps.me에서 근처의 별 두세 개의 호텔을 찾기 시작했다. Hotel Mariposa, Hotel Bello Caribe, Hotel Kohly 등을 찾았으나 모두 만실이란다. 이미 11시가 넘어 셋 모두 멘붕 상태였다. 인터넷만 되어도 부킹닷컴에서 지금 빈 호텔을 찾을 수 있는데 호텔에서도 인터넷이 안된다. 차에서 자야 하나? 아침에 샤워는 어떡하지? 다시 물 안 나오는 Yagrumas로 갈 수는 없잖아....
아바나 도심의 카사들은 많지만 이미 시간이 늦었고 카사들은 주차장이 없다. 산타 클라라를 아침에 떠난 이후로 씻지 못하여 온 몸은 이미 꿉꿉하다. 내일은 24시간의 비행을 해야 한다. 저녁은 잘 먹어 배는 안 고프지만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결국 11시 20분에 세미 씨에게 전화했다. 양치질 중이던 세미 씨에게 부킹닷컴으로 호텔을 찾아 달라했다. 세 번의 통화 끝에 아바나 도심의 Hotel Sevilla의 방 세 개를 예약했단다. 인적이 없는 아바나의 도심을 가로질러 Hotel Sevilla에 도착한 시간이 딱 자정이었다. 자정에 첵인을 해서 다행이라며 나는 주차(호텔 앞 노상주차인데 하루 밤에 7 쿡이고 밤새 경비 서 준단다)하고 호텔 로비로 들어서니 또 다른 문제가 벌어져 있었다. 호텔 프런트 직원이 자기는 인터넷 접속이 안되어 우리의 예약을 받을 수 없단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이미 세미 씨 카드로 300불을 지불했는데...
할 수 없이 자정 넘어 세미 씨에게 전화 걸어 호텔 야간 당직자를 바꿔줬다. 무려 12분의 국제전화를 하고 난 이후에 일단 내 카드로 600불(하루 자는데 200불이란다. 부킹닷컴에서는 100불이다)을 지불하란다. 그러면 방 키를 내주고 내일 아침에 Boss가 출근하여 인터넷 예약 확인하고 카드 승인 취소해 주겠단다. 결국 별 네 개인 호텔에 자정이 넘어 간신히 들어왔다. 시설은 오래되어 러시아 개방 이후의 모스크바 호텔 같았다. 그래도 샤워하고 깨끗한 침대에 누우니 살 것 같았다. 이젠 씻지 않고 못 자겠다. 문명의 세계로 다시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100불이나 주고 간신히 잤지만 호텔 아침식사 전경이 값어치 했다. 9층 펜트하우스에 있는 식당이 아바나 구도심 근처에서 제일 높다. 삼 면의 열린 창으로 아바나의 전경과 바다가 보인다. 생음악이 흐르는 아침 식당에서 본 전망이 쿠바에서의 마지막 사진이었다.
공항에서 렌터카 반납하고 첵 인하고 남은 쿡 유로로 환전하고 출국심사와 보안검색을 거쳐 게이트 앞 의자에 앉았다. 드디어 쿠바에서의 15박 여행이 끝났다.
이렇게 우리는 쿠바를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