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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pr 24. 2020

등산 일기


오늘 일정이 취소되어 날씨 좋은(그러나 바람 많은) 금요일이 한가해졌다. 이런 여유가 좋다. 북한산 정릉 탐방 안내소에 아침 9시에 도착했다. 집에서 겨우 4킬로 떨어져 있다. 등산로 입구에서 체온 재고 방명록 작성을 했다. 코로나 때문이다. 주말이면 인산인해로 붐볐을 등산로가 한적하기 그지없다. 등산화 신고 스틱만 들어 있는 배낭을 메고(심지어 물도 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들이 중학생일 때 둘이 함께 보국문까지 올랐으니 벌써 15년도 훌쩍 넘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보국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에는 아직 꽃도 많다. 오색딱따구리와 박새도 보았다. 청설모는 자주 보이나 다람쥐는 없다. 다람쥐의 천적이 청설모라고 어디서 본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등산로가 이렇게 가까이 있건만 지난 24년 동안 이 길을 걸은 것이 딱 두 번이라니. 이런 좋은 길을 옆에 두고 항상 멀리 있는 산들만 동경했다. 산은 오를수록 뒤돌아 보는 경치가 점점 좋아진다. 그래서 너도 나도 산을 오르는 것이다.

근원적인 상실감과 고독, 세상의 부조리의 실체는 실은 충족되지 않는 성욕과 본인 미래에 대한 불안일 때가 많다.

얼마 전에 읽은 책(문유석의 쾌락 독서)의 문장이 생각난다. 성욕과 불안이라는 키워드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일상적인 단어와 함께 있는 성욕이란 단어가 책을 읽을 때 왠지 좀 불편했다. 불편한 진실 중의 하나일까 했다.

보국문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하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노쇠한 몸이 달아오르는 체온과 땀으로 흥분하기 시작한다. 최근의 'N번방 사건'(그 방에 들어가지 못했으니 실체를 모르지만)과 부산 시장 성추행 사건이 떠오른다. 망해가는 어느 그룹 총수의 재판 뉴스도 떠오른다. 젊은 남자들의 충족되지 않는 성욕과 노인들(72세나 76세면 노인이다. 62세인 나도 노인이니...)의 제어 못하는 성욕이 공통점이다. 젊었건 나이 들었건 주체 못하는 성욕이 문제를 일으킨다.

치매에 걸린 아흔 살 넘은 노인이 요양원 침대에 누워 본인의 성기가 빨갛게 되도록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문지른단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결국은 노인의 양 손을 침대에 묶었단다. 정신줄도 이미 놓았고 몸도 쇠하여 제대로 앉지도 못하지만 성욕은 아직 남아 있단 얘기다. 충격적이다..

93세인 아버지가 이제 화장실 거동도 못하신다. 척추의 압박골절로 꼼짝없이 침대에 누우셨다. 두세 달 가만히 요양해야 한다는데 두세 달 뒤, 골절이 나아도 거동이 가능할까 의심이 든다. 문제는 밤에 두세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아 달라고 호출 벨을 누르신단다. 연로한 새어머니나 간병사도 밤에는 자야 하는데... 어머니의 잔소리(나 좀 도와 달라고... 밤에는 벨 누르지 말고 기저귀에 그냥 하라는 부탁)에 버럭 화를 내시며 내게 그제 아침 전화하셨다. 나 좀 오라고. 본인이 다 죽게 되었다고, 어떻게 좀 해 달라고, 어머니(48년을 함께 한)와 같이 못 살겠다고...       

어머니와 간병사에게 방에서 나가 달라 부탁하고, 아버지와 둘만 남았을 때 정색을 하며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 요양원 가서 소변줄 항상 끼고 살려? 아니면 집에서 밤에 그냥 기저귀에 할려?”

내가 너무 잔인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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