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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pr 26. 2020

코로나 때문에

내일 할 수 있는 건 오늘 하지 말자.



이즈음 대학에는 실시간 출결시스템이란 것이 있다. 학생은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스마트폰으로 시스템에 접속하여 출석을 증명해야 한다.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교수도 시스템에 접속하여 출강 체크를 한다. 대학평가에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하여 많은 대학이 도입했다.

강의가 끝나면 학생들이 교수인 나를 찾는다. 질문하기 위함이 아니고 자신의 출석을 인정해 달란다.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와서, 스마트폰이 고장 나서, 심지어 깜빡 잊고 접속하지 못했단다. 이런 학생을 보면 난 짜증이 난다. 출석의 학점 반영률은 내 과목의 경우 5% 미만이다. 정말 중요하지 않은 출석에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다. 학생한테 짜증을 내면 안 되는데, 학생이 고객인데...

코로나 때문에 모든 강의가 동영상 강의로 바뀐 뒤, 출결시스템이 무력화되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 아무 때나 동영상 강의를 수강하면 된다. 교수는 일요일 밤 자정(엄밀하게는 월요일 0시) 전에만 다음 주 강의를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면 된다. 아무 때나 출석하면 된다는 것에 학생들이 자유로워졌다면 아무 때나 동영상을 찍어 올리면 된다는 것에 교수들 역시 자유로와졌다. 출퇴근한다는 부담도 없어졌고 만원 지하철이나 출퇴근 시간의 교통혼잡도 피하게 되었다. 강의 시간에 맞춰 강의실에 나타나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졌다. 시간의 여유가 많아졌다. 따라서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수십 년간 해오던 고전적인 대면 수업과 동영상 강의는 사실 전혀 달라야 한다. 칠판에 판서하거나 파워포인트 파일을 띄우고 설명하던 고전적인 방식으로는 훌륭한 사이버 강의로 바로 전환될 수 없다.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긴박함이나 간절함이 없는 학생들의 의식을 내 동영상 강의에 집중시킬 수 있을까?

'Mission impossible!!'

언제 동영상 강의를 찍어 강의 플랫폼에 올릴 것이냐?
이번 주말 지나 다음 주말에 해도 될 동영상 강의 녹화를 오늘 이렇게 미리 한다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그러한 의문 속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란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내일 할 수 있는 건 오늘 하지 말자.

닥쳐야 한다. 당일치기니 초치기니 하는 시험공부는 머릿속에 암기가 잘 된다. 모든 숙제는 마감이 다가와야 정리가 되고, 문제가 풀린다. 학생은 공부가 일이고 교수는 강의가 일이다. 일을 미리미리 해 치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해야 할 일을 미리 하고 자신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말은 쉽고 우아한 인생을 사는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닥치지 않은 상황에서 하기 싫은 노동을 미리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내일 해도 될 일을 오늘 미리 하지 말자는 것은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이 없다면 지금 인생을 즐기자는 얘기다. 어차피 할 일은 하게 되어 있다. 안 하고 떼어먹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가는 잘리거나 쫓겨날 테니...

예를 들어 시간에 쫓겨서 하면 다섯 시간 걸리는 일이 있다고 하자. 그 일을 미리 하면 급하지 않기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충분히 갖고 일의 진행도 느려서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인생이란 결국 주어진 시간이라 미리 많은 시간을 들여 해야 할 일을 처리한다면 닥쳐서 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인생을 노동에 써야 한다.

미리 하는 일의 결과물이 닥쳐서 하는 일의 결과물보다 세련되고 성과가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성과의 차이가 무의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닥쳐서 하고 지금의 여유는 하고 싶은 것을 하자!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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