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Apr 27. 2020

Active Senior


어떤 사람이 연로하신 분들의 거동을 도와주는 제품을 개발했다. 노인들의 침대 옆에 놓을 수 있는 커다란 스탠드형 터치스크린이다. 스크린에는 음식 배달 주문 앱, 좋아하는 TV 드라마를 틀어주는 앱, 의사에게 전화하는 앱 등이 연결되어 있다. 두세 번 클릭이면 앱이 작동하고, 노인들이 누르기만 하면 직접 고객 서비스센터로 연결돼 작동법을 안내받게 해주는 버튼도 설치했다. 당장 출시해도 잘 팔릴 것 같은 멋진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제품의 시험 버전을 배치하고 문제가 발견되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기능은 음식 배달이나 TV 채널, 의사 상담 앱이 아니었다. 고객센터 연결 버튼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쉬지 않고 밀려드는 노인들의 문의 전화에 고객서비스 부서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노인들이 기기를 작동하지 못해서 전화를 거는 것이 아니었다. 노인들은 외롭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 리카이푸의 AI 슈퍼파워 -

코로나 때문에 많아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읽고 있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무리 AI(인공지능)가 발전해도 대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진짜 인간과의 접촉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젠 거동조차 불편해진 93세의 아버지가 밤에도 두세 시간마다 간병인 호출벨을 누른다. 기저귀가 축축하니 갈아달란 것을 핑계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Active Senior를 위한 플랫폼은 개발하겠다며 내게 의견을 구했다. Active Senior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다.
1.  은퇴를 했거나 앞둔 사람이다.
2.  건강에 문제가 없어 체력이 젊은 이 못지않다.
3.  경제적인 면에서 문제가 없어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
4.  여행이나 취미생활을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많은 여유 시간을 소비한다.
5.  인스타나 페북 등의 SNS 활동을 할 정도로 스마트폰을 잘 다룬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여행, 골프 및 등산 같은 레저활동을 함께 할 사람 찾기, 빵 만들기 같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 찾기, 새로운 오프라인 활동을 찾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앱을 개발하고 싶단다. 대학교수로서의 정년을 3년 앞두고, 방학만 되면 2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을 겁내지 않고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바로 Active Senior란다.


내가 해준 조언은 다음과 같다.
1.  그런 플랫폼 없어도 Active Senior는 잘 산다.
2.  스마트폰을 다룰 줄 알면 지금의 세상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심심하지 않다.
3.  불륜(?)을 조장할 수 있는 앱(그런 앱은 이미 많다.)으로 발전하지 않는 한 앱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Active Senior에게 제일 필요한 것도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인간과의 접촉이란 생각이 든다. 좀 더 나이 들어 'Active'란 단어는 떨어져 나가고 Senior(노인)만 남으면 결국 가족만 남는다. 그래서 자식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아들과 친구 같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을까? 딸과 애인 같은 관계를 가질 수는 없을까?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남은 나의 아버지와 있으면 15분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서로 할 말을 잃으면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흐르고, 아버지는 잠들어 버리고, 곧 나는 자리를 뜬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