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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Nov 01. 2020

골프와 캐디

이런 스포츠 없다.


골프 경기 중계를 보면 선수는 우아하게 필드를 걷다가 자기 공을 앞에 놓고 선다. 캐디와 몇 마디를 주고받거나 지푸라기를 날려 바람의 강도와 방향을 확인하고 캐디에게서 받은 골프채를 몇 번 휘둘러 본다. 깃발을 응시하며 공의 옆으로 가서 어드레스 자세를 잡는다. 캐디는 엄청 무거워 보이는 골프백을 들고 카메라 앵글을 위하여 자리를 비켜준다. 드디어 선수가 우아한 동작으로 샷을 한다. 뚝 떨어져 나간 잔디 덩어리를 캐디가 주워다 제자리에 다시 붙이고 방금 샷한 선수의 채를 받는다. 선수는 다음 플레이를 생각하며 걷기 시작하고 채를 수건으로 닦아 골프백에 꽂은 캐디는 이미 앞서 간 선수를 쫓아 엄청나 보이는 골프백을 둘러메고 허겁지겁 따라간다.

골프 선수는 걷고 연습 스윙 몇 번 하고 우아하게 샷을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골프백을 메고, 골프백에서 채를 넣고 빼고, 그린 위에서는 공을 닦고 깃대를 쥐며 벙커샷 이후의 벙커 정리며 온갖 궂은일은 캐디가 한다. 선수와 캐디의 역할분담 수준이 아니다. 제국주의 영국에서 시작된 골프는 귀족의 스포츠다. 귀족의 골프를 위해 하인이나 노예가 귀족의 뒤를 따라다니며 온갖 시중을 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여러 명이 따라다니며 그중 한 명은 햇빛을 가리는 큰 양산을 들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One bag/one caddie 시스템으로 일반 골퍼가 골프를 칠 수 있는 나라들이 많이 있다. 필리핀과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남아공이나 케냐 같은 아프리카에서 가능하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내가 골프를 시작한 1988년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스템이 흔했다.

운동하는 주인과 시중드는 하인이 함께하는 이런 스포츠가 또 있나 생각해 본다.

테니스 경기 중계를 보면 볼보이가 있다. 가끔 소녀들도 있는데 boy라 이름 붙인 것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한 마디 할지도 모르겠다. 네트 옆에 다람쥐처럼 대기하다 네트 주변에 떨어진 볼을 재빨리 줍거나 경기장 밖으로 나간 볼들을 주워 서어브를 준비하는 선수에게 원바운드로 던져준다.  코트 체인지를 위한 잠깐의 휴식시간에는 땀 닦으라고 큰 수건을 선수에게 건네준다. 골프만큼 다양한 잡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의 진행을 빠르게 할 뿐이다. 테니스도 역시 영국 귀족의 스포츠였다.

코로나 덕분에 호황을 누리고 있는 한국의 골프장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한 명의 캐디가 한 팀을 위해 봉사한다. 실력과 취향이 다른 네 명의 일반 골퍼를 지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아무나 쉽게 능숙한 캐디가 될 수 없다.

네 시간 반내지 다섯 시간이 걸리는 골프 라운딩은 즐기는 골퍼 입장에서도 충분한 운동이다. 라운딩을 보조하는 캐디는 육체적으로도 힘든 일이고 직업이기에 당연히 노동이다. 이즈음 한국의 골프장에는 캐디가 부족하다. 많은 캐디들이 심지어 하루에 두 번 라운딩을 돈다.  새벽 골프와 오후 골프. 육체적으로 또 사람들을 상대하기에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기에 새로 이 노동에 뛰어드는 젊은이를 보기 쉽지 않다고 한다. 캐디가 부족한 골프장들이 슬슬 노캐디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캐디 없는 라운딩이 가능해지려면 골프장이 아주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골프장이 지금보다 훨씬 여유가 있어야 한다. 6분 내지 7분 간격으로 골퍼들이 몰려가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노동을 하는 캐디의 입장에서 바람직한 골퍼란??

캐디보다 먼저 골프백에서 자신의 채를 뽑아가는 골퍼, 샷을 하고 손수 자신의 채를 백에 넣고 다음 샷을 위한 채를 두 개 정도 뽑아 드는 골퍼, 핀까지의 거리는 야드 목이나 레이저로 손수 측정하는 골퍼, 그린 위에서 공을 닦아주는 서비스는 받지만 퍼팅 전 라이는 자신이 직접 놓는 골퍼, 오비가 나거나 해저드에 들어간 공을 '헌공이니 찾을 필요 없다.'라고 먼저 말하는 골퍼, 벙커샷 정리와 그린 위 자신의 디봇을 정리하는 골퍼, 진행이 느려져 앞 팀과의 간격이 벌어지면 캐디보다 먼저 동반자들에게 빠른 진행을 독려하며 뛰어가는 골퍼.

결국 캐디의 도움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골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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