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Nov 12. 2020

제자 결혼식 건배사



소개받은 OO대학교 기계시스템공학과 윤재건입니다.

우선 이렇게 좋은 날 이 자리에 참석하신 하객 여러분께 혼주이신 신랑 신부 부모님을 대신하여 감사인사드립니다. 하객 여러분 모두 이 결혼의 증인이 되신 겁니다.


제가 주례를 선 신랑의 후배가 3명이나 이 자리에 있습니다. 한 2년 전에 한 제자의 마지막 주례를 서고 다시는 주례 안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신랑이 건배사라도 한 말씀 해달라기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런데 교수들은 한 말씀 시작하면 무조건 50분입니다. 신랑 신부를 비롯하여 하객 여러분들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세 개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건배사를 대신하겠습니다.

"Just three stories. That's it."


첫 번째는 신랑과의 관계입니다. 오늘의 신랑 OOO군은 98년에 OO대학교 입학했습니다. 올해 딱 마흔입니다. 저와는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났지만 지금은 함께 늙어가는 친구 관계입니다. 함께 골프 치고, 비용 각자 계산하고, 술 한잔 하는 사이입니다. 친구보다 더  좋은 관계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큰 기대 안 합니다. 부부가 다투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거나 서로의 다른 관계(부모나 형제 및 친적)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관계가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저보다 2살 적은 후배 이야기입니다. 부산에서 장남으로 일반고등학교 마치고 서울대학교 입학했습니다.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교 1등을 수도 없이 했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졸업하고 직장 얻고 결혼도 했지요. 그런데 결혼하고 부모님과 의절했답니다. 두 아들 잘 키워 저보다 먼저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최근에야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어머니와 어쩔 수 없이 독거노인 된 아버지와 화해하고 처음 온 가족이 부산 간다고 하더군요. 궁금해서 왜 부모와 의절까지 했냐고 물었습니다. "부모님이 제 아내를 너무 못살게 굴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아들 둘은 낳은 아내와 이혼할 수는 없잖아요." 손주 크는 재롱을 못 보고 며느리 탓 아들 탓하며 노후를 보내셨을 후배 부모님의 인생이 참 안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최근에 할아버지가 되었는데요.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아들딸은 전생에 빚쟁이였고 손주는 전생에 애인이었다고요.  책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이 큰 부담이었는데 손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거든요. 그런 손주 재롱을 즐기지 못하셨을 테니 정말 슬픈 일이지요.


세 번째는 유발 하라리의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전 이즈음 사피엔스를 침대 테이블에 항상 두고 성경 대하듯 합니다. ‘어른들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 대부분 나름 선의를 갖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실은 어른들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어른 말을 따르는 편이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세상을 아주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세계는 천천히 변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어른들의 말이 시간을 초월한 지혜인지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에 불과한지 결코 확신할 수 없다.’ 코로나 같은 유행병이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변화시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늘 선의를 갖고 하는 제 건배사도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신랑 신부는 서로 덕 보겠단 기대 하지 말고 평생 친구처럼 대화하고 지켜주며 함께 잘 살기를 바랍니다.


건배 제의하겠습니다.

제가 '우리가' 하면 하객 여러분이 '증인이다!'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증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골프와 캐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