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지금도 진화 중이다.
아들이 결혼하지 않겠단다.
내 아들은 89년생이다. 이제 겨우 만 31살이다. 신년이면 직장생활 7년 차에 접어든다. 제대하고 대학 3학년 때부터 학교 앞에 원룸을 얻어 집을 나갔으니 함께 생활하지 않은지는 벌써 8년이 되었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보는 것 같다. 가족이 모여 식사하면 항상 아들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에는 여자 친구 얘기도 잘하더니 언제부터인가 결혼이나 여자 친구에 대한 것은 더 이상 묻지 말란다. 자신은 비혼 주의자란다.
"아빠 엄마한테 용돈 받아 살다가 이제 내가 돈 벌어 내 마음대로 쓰면서 산지 얼마 안 됐는데, 결혼하면 내가 번 돈도 내 맘대로 못쓰잖아."
직장생활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아들은 배를 샀다.( https://brunch.co.kr/@jkyoon/33 )순전히 자신의 낚시 취미를 위해 부모와 상의도 없이 덜컥 중고 레저보트를 천만 원 주고 샀다. 주말마다 열심히 바다에 배를 띄우고 낚시를 하더니 2년 뒤에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이 힘들다며 배를 처분했다. 하루에 10만 원 정도 내는 낚싯배를 타는 것이 오히려 낫겠단다. 일 년에 한두 번 낚싯배를 타는 것 같다. 회사 기숙사를 나와야 한다며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봉천동에 원룸을 얻었다. 부모의 도움도 받지 않았지만 부모와 상의도 없었다.
"아빠한테 돈 받으면 아빠 잔소리도 듣고 간섭도 받아야 하잖아. 간섭받긴 싫거든."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사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내심 섭섭하기도 하다. 이제 완전히 내 품을 떠난듯하여...
동물의 본능은 생존과 번식이라는데 동물인 현대의 인간은 번식 본능을 잃어버렸다. 번식 본능은 생존본능 다음이다. 생존이 불확실하면 번식하지 않는다. 전쟁 중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 위험한 시기에 어떻게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1차와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명 손실이 컸던 전쟁은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뿐이었다. 전쟁 이후에 어느 나라에나 베이비 붐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대규모 전쟁은 없지만 전쟁 상황만큼이나 미래가 불확실하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재해가 여기저기 속출하고 있고, 그러한 재해 상황을 우리는 영상을 통하여 매일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 같은 팬데믹도 인류를 계속 불안으로 내몰고 있다.
산업화 이후 정보혁명을 거치며 인간의 일상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겨우 10년 전에 소개된 아이폰이 우리의 일상에 이렇게 영향을 줄지 예상 못했다. 이미 시작되었다는 인공지능 혁명은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솔직히 두려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자신의 생존조차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되고 엄마가 된단 말인가? 좋은 사람 만나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점점 늘고 있다. 출산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계산기 두드려 보아도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임신과 출산 및 육아를 하다 보면 누군가는(대부분 엄마) 직장을 쉬어야 하고 외벌이로는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낳지 않는 것이다.
출산하지 않는 결혼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결혼제도의 기원과 역사를 돌이켜 보면 결혼은 끊임없이 진화했다. 지금도 진화 중이다. 결혼하지 않고 동거가 익숙한 프랑스나 스웨덴에서 오히려 출산율이 높다는 사실은 진화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결혼의 진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우리는 향후 이십 년간의 변화가 과거 이백 년간의 변화보다 더욱 급진적일 수 있다는 합리적인 유추를 해볼 수 있다. 현대인들은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한때 견고한 사회적 규범이었던 결혼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을 넘어 종국에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결혼의 종말을 초래하는 요인으로는 여성의 지위 향상, 개인주의, 배우자에 대한 높은 기대, 성 역할 변화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 양극화 심화, 디지털 기술의 발달, 기대 수명 증가 등이 있다.' 한중섭의 '결혼의 종말'
아들의 비혼 주의 선언은 아직 진화가 덜 된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혼이 좀 더 진화되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으로 아버지인 나는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