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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Dec 20. 2020

가파도 소망 전망대

낭만적 사랑을 꿈꾼다.




가파도에 갔다.

마라도를 가 본 사람만이 가파도에 간다. 마라도를 가지 않고 가파도를 먼저 찾는 사람은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국토 최남단의 섬이란 브랜드 때문에 많은 사람이 마라도를 방문한다. 작년 가을에 마라도 갔었다. 마라도에 짜장면집이 많았다. 마라도 한 바퀴 돌고 짜장면 한 그릇 먹으면 돌아가는 배 시간에 딱이었다. 마라도의 기억은 터무니없이 많은 짜장면집이 전부다. 그리고 등대 정도...

가파도는 하늘에서 보면 아주 평평한 섬이기에 팬케이크 같다고 누가 그랬다. 빈대떡이 아니고... 운진항(모슬포 남항)에서 가파도 가는 배를 탔다. 일요일이라 사람 많을 줄 알고 아침에 무지 서둘러 간신히 11시 배를 탔다. 이런 서두름이 싫어 포기하고 숙소에서 개길까 했다. 그러나  렌터카 놀고 있는 꼴이 아까와... 그러나 날이 추워 일요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별로 없다.

운진항에서 가파도까지는 10분이다. 눈 앞에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인다. 근사한 가파도 터미널 건물을 보며 망설였다. 오른쪽으로 돌까? 왼쪽으로 돌까? 미리 정보를 찾지 않았다는 것을 잠시 후회했지만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왼쪽을 택했다. 바다 건너 눈 덮인 한라산이 보인다. 멀리 서귀포 앞 섬들도 보이고 송악산과 산방산은 지척이다. 섬을 반쯤 돌아 하동 포구에 오니 마라도가 눈 앞이다. 마라도의 왼쪽 절벽이 제법 높아 보인다. 빠삐용이 뛰어내린 절벽을 연상하라고 유람선에 빠삐용과 친구 더스틴 호프만 조형물이 있었다. 섬을 한 바퀴 돌았는데 딱 한 시간 걸렸다. 가파도는 전체가 보리밭이란다. 봄에 청보리를 보러 많이들 온단다. 멈춰서 있는 두 기의 풍력발전기가 흉물이다. 사진을 망치고 있다. 돌지도 않는 발전기를 누가 설치했을까? 절로 욕이 나온다. 남부발전!!

가파도에서 제일 높은 곳이 해발 20.5미터다. 가파도 중심 그곳에 전망대가 있다. 이름이 소망 전망대다. 많은 사람의 소망을 적은 리본들이 바람에 세차게 흩날리고 있다. 무수한 소망들이 하늘로 바다로 의미 없이 떨어지는 것 같다.

난 소망이 없어 리본을 매지 않았다.

소망 전망대를 돌아 나오는데 핑크빛 의자가 눈에 띈다. 사랑하는 연인을 의자에 앉히고 남자가 청혼하는 장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낭만적인 사랑을 꿈꾼다.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이런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의 역사는 채 이백 년이 되지 않는다. 이백 년의 관성이 아직 유지되고 있어 내 나이에도 가끔 낭만적 사랑을 꿈꾼다.

낭만은 ‘Roman’에서 유래했다. 낭만이란 현대사회에서는 꿈이나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고 감상적인 정서를 중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네이버가 알려준다. 꿈이나 공상의 세계는 현실이 아니다. 즉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고 냉정하다.

내 친구는 낭만적 사랑을 꿈꾸고 있기에 무려 세 번이나 결혼했다. 처음은 사별했고 두 번째는 이혼했고 노후에 외로울 것 같다며 환갑 즈음에 또 결혼했다. 두 번까지는 친구들에게 알려 축의금 받았는데 세 번째는 성당에서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갔다. 한 번의 결혼도 끝내지 못한 친구들한테 미안했겠지...

나보다 두 살 적은 동료가 올해 환갑을 맞았다. 유학 가기 직전에 결혼하여 미국에서 아들 하나 낳고 귀국 후 얼마 후에 이혼했다. 보통 이혼하면 엄마가 양육권을 갖는데 내 친구는 아들과 오래 동안 둘이 살았다. 아들이 중학생일 때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딸 둘을 낳고 온 가족 함께 미국으로 연가 갔다가 혼자 귀국했다. 방학이 되어도 미국을 가지 않는다. 그러더니 결국 이혼했다고 실토했다. 환갑 맞은 독거노인에게 물어봤다. 왜 두 번이나 이혼했냐고? 이 정도 벌어 이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더란다. 도저히 두 아내의 기대를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단다.

역사적으로 결혼은 거래였다. 우리 세대에서도 흔했던 중매결혼은 확실한 거래다. 양가의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당사자들이 서로 만날 수 있다. 몇 번의 데이트 중에 서로 참을 수 없는 문제가 나오지 않으면 약혼을 하고 결혼을 한다. 거래가 성사되면 양가에서 중매쟁이에게 사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한 중매결혼에서 낭만적 사랑을 하는 부부도 어쩌다 있겠지만 근본은 거래다.

많은 사람들이 낭만적 사랑을 꿈꾸면서 연애를 한다. 백마 타고 오는 왕자님과 너무 예쁜 공주님을 어릴 때부터 이야기책에서 너무 많이 봤다. 디즈니의 모든 만화영화가 그랬고 지금도 틈만 나면 보는 영화와 드라마 모두 너무 낭만적이다.

낭만적인 사랑과 결혼은 현실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 사랑도 환산되고 결혼은 거래인데 이백 년의 관성이 계속 문제를 일으킨다.

꿈꿀 자유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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