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risk, high fun.
아이폰이 울린다. 아들 우석이의 전화다.
웬일일까? 주체적인 인생을 사느라 거의 전화가 없는 녀석이다.
"오, 아들 웬일이야."
"응 아빠 나 배 샀어."
"정말? 사진 보내봐."
대학을 졸업하고 자동차 디자이너로 취직하여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회사 기숙사에 살고 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딱 일년 만에 아들이 배를 샀단다. 아들의 취미는 특이하게도 바다낚시이다. 나는 지렁이를 바늘에 꿰는 것이 끔찍해 아들에게 낚시를 가르쳐 준 적이 없다. 동네 친구가 삼척으로 대학을 가 친구 만나러 삼척을 몇 번 다니더니 그 친구에게 바다낚시를 배운 것이다.
아들의 바다낚시를 여러번 따라갔다. 동해로 남해로 서해로... 나는 배멀미가 심해 배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갯바위에서 아들과 낚시하는 것은 좋아한다. 대부분의 갯바위는 경치가 참 좋다. 어떤 곳은 가슴이 저릴 정도로 좋다. 그러나 갯바위에서의 낚시조황은 별로였다. 번듯한 고기를 잡았던 기억조차 없다. 아마도 그래서 배를 사겠단 마음을 먹었나 보다. 경치좋은 곳에서 몇시간을 함께 보내고 근처 회집에서 아들과 한잔하는 재미가 꿀맛이다.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재미만 있는 일은 오래 못한다. 재미와 보람이 함께 있어야 한다. 아들과의 대화는 많은 아버지에게 보람을 준다. 친구와 하는 술 한잔과 다른 뿌듯함이 있다. 무엇인가를 대물림하고 있다는, 무엇인가를 교육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자식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당연히 부모다. 보잘 것 없이 허약한 생명체로 태어나 부모로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고 거의 모든 욕구의 충족을 부모를 통하여 이룬다. 이렇게 보육, 양육 및 교육을 받다보면 인생관이나 가치관의 형성에 부모가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보지도 못한 채 부모의 희망이, 부모의 권고와 충고가 인생의 목표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아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다. 나는 아들이 자신이 좋아 하는 것을 하며 살기를 바랐다. 그렇게 아들이 행복한 생을 살기를 바랐다. 그런 아들이 주체적으로 상의도 없이 부모 허락도 안 받고 배를 사버렸다. 사실 살 줄 알았다. 지난 가을 배를 운전할 수 있는 면허를 딴다고 했다. 동호회카페에 가입하여 배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로 배를 끌고 다니기 위해 트레일러 면허를 따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고야 말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얼마주고 산겨?"
"배 끌고다닐 트레일러까지 천만원."
"무슨 배가 그리도 싸냐?"
"중고 레져보트니까."
"배 보러 안 올꺼야?"
"알았어, 이번 주 토요일에 갈께."
아들이 산 배는 소위 모타보트 였다. 네 명이 타면 딱 일 것 같은 사이즈에 50마력 야마하 엔진이 달려 있다. 이렇게 작은 배로 바다에 나가 낚시를 하겠다니 부모 마음에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기도제목이 하나 새로 생긴 것이다.
"언제 첫 출항 나갈꺼야?"
"명의이전하고 손 좀 보고 담 주 토요일. 날씨도 좋아야지."
"누구랑 처음 나갈꺼야? 나 대기해?"
"응, 아빠 대기해."
나는 'High risk, high fun.' 임을 알고 있다. 작은 배타고 바다에 나가 낚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기에 큰 즐거움에 틀림없다. 아들이 거기서 어떤 보람을 찾을지 모르겠다. 보람이 없다면 결국 오래하지 못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