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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Oct 01. 2016

청첩이 어렵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살아내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엄청난 부고와 청첩을 받는다.

부고는 갑작스럽게 날아든다. 장례절차 역시 3일을 넘기 어렵다. 그래서 해외나 지방 출장일 경우 면피하기 쉽다. 그러나 청첩은 좀 다르다. 면피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전 딸을 결혼시킨 대학동기가 동기모임에서 청첩장을 돌렸다. 결혼식 딱 2주 전에 돌려야 하는데 미리 돌려서 미안하다고... 무슨 소린인가 했다. 2주 전에 돌려야 선약을 핑계로 결혼식 불참에 대하여 면피 할 수 있단다. 청첩 받는 사람을 배려해서 딱 2주 전에 해야 한단다. 그럴듯 했다. 조의를 표하고 축하를 하는데 면피를 생각한다는 것은 내 감정의 표현보다 상부상조라는 사회적 책임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편으로 청첩장을 받거나 면전에서 받는 경우 고민하게 된다. 가장 황금시간인 토요일 점심을 전후하여 벌어지는 결혼식을 직접 참석할 것인가? 확실히 갈 것 같은 지인에게 축의금만 부탁할 것인가? 나중에 뭐라고 핑계댈 것인가? 아예 무시할 수 있을까? 얼마를 축의금 봉투에 넣을 것인가? 등등... 많은 생각과 고민에 빠진다.

진부한 결혼식에 참석하여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덕담과 축의금 봉투를 건네고, 영 어색한 자리에 앉아 별 맛 없는 스테이크를 썰거나 복잡한 부페식 피로연장에서 접시를 들고 돌아다니는 일에 내 인생의 귀중한 한 조각을 사용할까? 솔직히 말해, 하기 싫다. 본능적으로 싫은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신랑과 신부에게는 약간 미안하지만...

허례허식이라 하여 거창한 결혼식을 법으로 못하게 한 적이 있었다. 가정의례준칙이란 것을 제정하여 약혼식, 인쇄된 청첩장, 화환, 답례품, 피로연 등을 못하게 하고 결혼식의 순서까지 간략하게 정해 이를 어기면 벌금을 물게 하던 시대가 70년대에 있었다. 그 당시의 판에 박은 간소한 절차가 지금의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결혼예식에 남아 있다고 한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결혼식은 인도처럼 온 마을 전체의 축제이거나, 진정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의 파티이다. 기꺼이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정말 가까운 사람들의 파티이다.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가 하객들과 어울려 흥겨운 춤을 추는 장면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다. 축제나 파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음주가무가 필수적이다. 기분 좋은 날 술과 춤으로 모든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신랑신부의 절정의 행복감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다.

작년 이맘때 딸과 둘이서 네팔을 2주간 여행했다. 그 당시 딸과 함께 꿈꾼 딸의 결혼식은 이렇다.


https://brunch.co.kr/@tourister/10

딸의 결혼식이 딱 4주 앞으로 다가왔다. 특급호텔에서의 허망한 결혼식, 교회나 성당에서의 불편한 결혼식, 웨딩홀에서 찍어내는 인스탄트 결혼식 말고 진부하지 않은 결혼식을 항상 꿈꿔왔다. 정답이 없는 정말 어려운 결혼식을 꿈꾼 것이다. 꿈은 꿀 때가 행복하다. 현실은 아버지인 내가 딸과 둘이 결혼식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식의 당사자는 신랑신부와 양가부모다. 둘의 생각의 일치를 보기도 어려운데 여섯명 의견의 일치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 신랑신부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래서 결국은 남들처럼 결혼식을 하는 것이다.  

"아빠, 내 결혼식이 가장 진부한 결혼식이 되고 있는 것 같아!" 결혼식장을 정한 날 딸이 내게 한 말이다. 결혼을 실제로 준비하고 있는 딸이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사실 나는 전혀 내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러나 딸이 가장 마음 쓰이는 사람이 나 일것 같다. 정말 어려운 진부하지 않은 결혼식을 원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청첩이 어렵다. 이즈음 대세인 모바일 청첩장이 편하기는 하나 집안 어른에게 그렇게 할 수 없어 청첩장을 인쇄했단다. 진정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모바일로 쉽게 청첩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진정 가까운 것일까? 그것이 문제다. 같은 직장에 다닌다고 다 동료가 아니다. 또 사회적인 활동 중에 만난 지인들이 가장 어렵다. 차별을 두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청첩을 나도 받아봤다. 받고난 기분이 별로였다.  그래서 어렵다. 얼마전 아들을 결혼시킨 지인이 페북에 글을 올렸다. 결혼식에서 하객들에게 한 인사글을 올린 것이다. 인생의 큰 숙제를 하고 난 기분이라고... 그 기분에 나도 큰 공감이 가서 좋아요를 누르며 진심으로 축하했다.

청첩이 어렵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살아내는 것이라는 문장이 생각나는 토요일 오후이다.


Maroon 5 : Sugar


https://youtu.be/09R8_2nJtj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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